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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청년 발언대]‘통일 해야 한다’ 답을 정해놓는 건 교육이 아닌 주입

입력 | 2018-11-14 09:50:00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서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통일교육지원법>은 통일교육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민족공동체 의식 △건전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가치관을 기르기 위한 교육으로 정의한다. 최근 남북관계가 화해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대북관계를 두고 찬반대립이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통일을 전제로 한 교육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통일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통일교육원 주도로 연간 고정적으로 교육

통일교육을 주관하는 통일부 산하의 통일교육원은 매년 <통일교육지침서>를 발행해 교수자에게 통일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제시해왔다. 올해 8월에는 ‘교사들이 적용하기 모호한 내용이 많다’는 피드백을 반영한 <평화·통일교육 : 방향과 관점>이 발간됐다. 권위적인 느낌을 주는 ‘지침서’라는 명칭도 변경했다. 통일교육원 학교통일교육과 최원연 과장은 “그동안 당위적인 통일교육에 관한 비판적인 피드백이 있어왔다”며 “올해 발간된 <방향과 관점>은 통일이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시·도 교육청에서는 통일교육을 1년에 8시간 편성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초·중·고 학교현장에서는 교과 시간과 교과 외 시간을 활용해 통일교육이 이뤄진다. 교육내용은 통일의 필요성, 이산가족의 아픔 등의 주제로 법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계수초등학교 간우연 교사는 “통일교육은 주로 도덕, 사회, 국어 등의 교과 내용과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에 하는 체험학습, 토론, 외부강사 교육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통일교육원은 학교 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해 ‘통일교육 연구학교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심사를 통해 선정된 신청학교는 2년간의 예산과 통일교육 교수학습법 등을 지원받는다. 통일교육 연구학교인 장성남중학교는 전 교과에서 통일과 접목한 내용을 가르치고 통일에 관련된 행사를 주최하는 등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장성남중학교 김가을 교사는 “무조건 통일을 강조하기보단 나라사랑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통일을 반대하는 학생도 있어 통일교육을 비용과 편익 측면에서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민원 들어오고 정권따라 바뀌기도

통일교육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일반 교사들에게 통일교육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주제다. 교사 본인도 통일과 관련된 지식을 따로 습득한 경험이 없어서다. 기존 통일교육 연수는 교육청이 아닌 통일교육원에서 진행했으며 희망하는 교사가 통일교육원에 직접 신청해야 했다. 통일교육원에서 이뤄지는 연수도 집합연수보다는 사이버연수가 많았다.

통일부가 학교 통일교육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교육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학교 교육인 만큼 교육부에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양재고등학교 김병연 교사는 “통일부는 학교 교육이 아닌 통일정책을 다루는 기관”이라며 “통일교육에 교육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에서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통일교육 전담인력이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난 상황”이라며 “통일교육원의 방향과 어긋나지 않는 방향에서 학교 평화·통일교육활성화계획이 발표될 예정”이라 말했다.

민원제기로 통일교육을 부담스러워하는 교사도 많다. <통일교육지원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내용으로 통일교육을 한 교육자를 고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서다. 간우연 교사는 “직·간접적으로 민원을 경험한 교사들은 통일교육을 꺼리게 된다”며 “시험범위에서 제외하거나 교과서만 읽고 넘어가는 등 소극적으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중적인 교육내용도 교사를 혼란스럽게 한다. <평화·통일교육 방향과 관점>에서 북한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경계의 대상이면서 함께 평화통일을 만들어 나가야 할 협력의 상대라 명시돼있다. 간우연 교사는 “하루는 북한과의 통일을 얘기하다가, 다른 날에는 전쟁을 얘기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는 교육”이라 말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통일교육의 방향이 바뀌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통일부의 정책이 정권에 따라 바뀌다 보니 통일교육원의 교육 방향도 영향을 받는다. 간우연 교사는 “지난 정권에선 안보에 중점을 뒀지만 현 정부는 평화를 강조하는 것처럼 정권마다 강조점이 달랐고, 학교 통일교육도 그에 맞춰 이뤄졌다”며 “교육은 정치의 논리와는 다르게 접근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임재천(공정대 통일외교안보전공) 교수는 “분단상황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정치와 무관하기 어렵다”면서도 “교육내용이나 통일교육의 정도를 일관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위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열린’ 방식 필요해

통일을 전제로 하는 당위적인 접근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답을 정해놓는 건 교육이 아닌 주입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통일교육원 최원연 과장은 “주입식 통일교육에서 탈피해 다양한 견해를 존중하도록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교급별로 학생들이 통일교육을 받아들이는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초등학생은 통일교육에 수용적이지만 중·고등으로 갈수록 비판적 사고능력이 발달해 당위성을 강조하는 교육은 실효가 떨어진다. 양재고등학교 김병연 교사는 “고등학생은 실제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에 기반을 둔 통일교육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통일은 찬반 논란이 있는 주제인 만큼 학생들이 가진 다양한 입장을 공유하는 가운데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교육방식의 변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당위성을 내세우는 통일교육을 고집하는 이상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긴 어렵다. 교육방법에 차이만 있을 뿐 통일을 추구하는 방향성은 바뀌지 않아서다. 결국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통일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통일담론 스펙트럼을 포용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재천 교수는 “젊은 세대는 통일의 당위성에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며 “통일이 꼭 필요하다고 강요하기보다는 젊은 세대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열린 자세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현 고려대 글로벌경영학과 17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