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저축은행 한채진은 2018∼2019 시즌 개막을 앞두고 FA 계약, 이사, 재활 등 농구 외적으로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한채진. 스포츠동아DB
WKBL은 지난 3월 8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 그랜드볼룸에서 2017~2018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을 가졌다. 시상식은 모처럼 6개 구단 선수단이 한데 모여 얼굴을 마주하고 한 시즌 동안 고생한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치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상식 분위기는 마냥 밝을 수 없었다. 경기도 구리시를 연고로 해왔던 KDB생명이 팀 운영 불가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팀의 주장이었던 한채진(34·OK저축은행)은 모범선수상을 수상해 단상에 올랐다. 좋은 상을 받았지만 팀을 잃은 마당에 웃음이 나올 리가 없었다. 한채진은 “힘들게 시즌을 치렀다. 더 좋은 팀을 만나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또 다른 희망이 찾아오길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 이사, 부상, FA…행복하지 않았던 여름
희망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시즌 종료 후 휴가를 받았지만,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새로운 모기업이 생겼다는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들려오지 않았다. 한채진에게 지난 여름이 너무나도 길었다. 휴가 중에는 구리 숙소의 짐을 빼라는 연락을 받았다. 선수들은 그간 구리체육관 바로 옆에 위치한 오피스텔을 숙소로 사용해왔다. 2008년부터 구리에서 생활해온 한채진은 만감이 교차했다.
“10년을 썼던 숙소여서 내 집 같은 느낌이었는데…. 진짜 떠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이 없다는 생각이 더 와 닿았다. 후배들이 걱정이었다. 나야 은퇴할 때가 다가왔는데 후배들은 꿈을 품을 시기이지 않나. 내가 프로에 입단했을 때가 생각났다. 현대산업개발에 입단했는데, 팀이 해체된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농구 그만해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신한은행이 인수했지만, 그 때는 너무 불안했다. 시즌이 다가오는데 새로운 모기업 얘기가 없으니 후배들은 많이 불안했을 거다. ‘언니, 팀 생기는 거 맞아요’라고 묻는 후배들도 있었다.”
OK 저축은행 한채진(오른쪽). 스포츠동아DB
한채진은 건강과 거취 문제도 있었다. 지난여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지만, 운신의 폭이 좁았다. 매 시즌 꾸준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고 관심을 갖는 팀도 있었다. 그러나 연맹이 팀을 위탁 운영하는 상황이었기에 제대로 된 협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여기에 발목 수술까지 받았다.
“수술은 원래 작년에 했어야 했는데, 팀 성적을 내야했던 상황이라 미뤄 놨던 거다. 안 좋은 상태로 한 시즌을 뛰었더니 발목 뼈 모양이 달라지고 더 악화됐다. 웃자란 뼈를 깎아내면서 회복이 늦어졌다. 선수생활 하면서 수술은 처음이었다. 통증이 아직 남아있다. 평소 걸을 때마저 아플 정도다.”
● “행복하게 농구하고 파”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수술 부위 통증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녀는 20대 때와 마찬가지로 코트 위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다. 경기를 마치면 몸 곳곳에 멍이 들기도 한다. 이기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OK저축은행이 시즌 개막 직전 네이밍 스폰서를 하면서 구단 운영에 약간 숨통이 트였지만, 생활면에서는 KDB생명 시절에 비해 열악하다. 구리에서 짐을 뺀 선수들은 수원 보훈재활체육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WKBL에서 신경도 많이 써주고 이곳(보훈재활체육센터) 분들도 너무 잘해주시는데 아무래도 구리에 있을 때보다는 열악한 게 사실이다. 그래도 후배들이 그 안에서 잘 적응했고 밝은 분위기 속에 운동하고 있다.”
OK 저축은행 한채진(오른쪽). 스포츠동아DB
한채진은 우리나이로 35세다. 어느 덧 노장 대열에 들어섰다. 팀 내에서 조카뻘 되는 후배들도 있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할머니’라 불리기도 한다. 최신 유행가에 관심이 없고 20대들의 줄임말도 잘 몰라서 붙은 별명이다.
“나는 햄버거도 잘 안 먹는 편이어서 아주 유명한 브랜드 말고는 잘 모르고 어떤 햄버거가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은 애들이 아이돌 그룹과 노래 얘기를 하는데, 하나도 모르겠더라. 후배들이 ‘언니 세대차이 난다’면서 ‘할머니’라 부르더라. 그렇게 불린지 꽤 됐다. 내가 그런 거에 무관심한 것도 있지만, 어느 새 세대차이가 나는 나이가 됐다. 언젠가는 그동안 가깝게 지낸 선수들과 함께 농구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 둘 다 은퇴를 하고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더라. (김)연주까지 은퇴했다. 나도 은퇴를 생각해야 할 시기다. 몇 년간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 팀에는 노현지, 구슬, 김소담, 안혜지 같이 기량 좋은 선수들이 있다. 후배들을 도우면서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이제 진짜 행복하게 농구를 하고 싶다.”
수원|정지욱 기자 st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