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 카르텔 무능 정부, 앞잡이 국회, ‘갑질’ 단체…“수십조 국민 혈세 돌려달라!”
● 10조 누리과정 예산이 원장 쌈짓돈으로 전락
● ‘가계부’보다도 못한 막무가내식 회계
● 정치권 로비·압박으로 사립유치원 철옹성 쌓아
● 국회가 뇌물 받고 ‘발주 입법’, 유 부총리 당시 공동 발의
● “유치원은 사유재산” vs. “교육은 장사 아냐”
● 한유총에 휘둘리고, 감사 결과 뭉개고 …“교육부를 처벌하라”
● 갈 길 먼 국·공립유치원 전환, 구체적 방법 같이 논의돼야
[뉴시스]
대한민국 전체가 사립유치원의 백화점식 비리행위로 충격에 빠졌다. 지난 7년간 아이들 보육에 쓰라고 내준 나랏돈 10조 원이 유치원 원장과 그의 가족들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에 학부모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유치원 해서 돈 번다”는 얘기가 어제오늘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갑자기 열린 판도라 상자에 하나같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아이들을 볼모로 자기 배 불리기에 바빴던 비리 유치원의 민낯, 40여년 가까이 이어져온 사립유치원과 정치계 유착 등을 되짚어보며, 사립유치원의 변화 방향을 모색해봤다.
올해 10월 1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감에서 ‘17개 시·도교육청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비리 유치원의 실체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국감 후 교육부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각 교육청 홈페이지에 ‘2013~2018년 유치원 감사 결과’를 일제히 공개토록 했다. 2013년부터 누리과정이 시행된 이래 처음 진행된 일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감사 적발 건수는 국공립유치원 467건, 사립유치원 5986건으로 총 6453건에 달한다. 유치원 수로 따지면 전국 1878곳, 유용 및 횡령 금액만 269억 원이 넘는다.
2018년 10월 현재 ‘유치원 알리미’(유치원 정보공시시스템)에 등록된 전국 유치원은 9140개로 원아 수는 69만2139명에 달한다. 이 중 국공립유치원은 4806개(52.6%)이고, 사립은 4334개로 전체 유치원의 47.4%를 차지한다. 유치원 개수는 국공립이 더 많지만 원아 수는 사립유치원이 전체 원아의 74.7%를 차지할 만큼 월등히 많다.
정부·학부모에게 받은 돈 그대로 ‘인 마이 포켓’
10월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소재 환희유치원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뉴스1]
이번 유치원 감사 결과의 핵심은 사립유치원의 회계 비리 백태다. 전 국민을 분노에 빠뜨린 시작점은 경기도 화성시 오산(동탄신도시)에 있는 ‘환희유치원’이다. 감사 자료에 따르면 환희유치원 원장은 유치원회계 세입예산을 관리하면서 수익자부담 교육비를 본인의 개인 계좌로 직접 납입받고, 교육청과 화성시에서 교부한 각종 지원금을 개인 계좌로 모조리 이체했다. 그런 다음 해당 월의 원아 현원에 맞게 계산한다는 이유로 매월 일정금액을 수업료, 급식비, 방과후비 등의 명목으로 개인 계좌에서 유치원 계좌로 역(逆)입금하는 수법으로 부정을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원장은 유치원 운영비를 마치 개인의 돈처럼 물 쓰듯 썼다.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을 사는가 하면, 노래방·미용실, 술집, 성인용품점 등에서도 유치원 체크카드를 사용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유용한 횟수만 총 1032회, 사용 금액도 5000만 원이 넘는다. 또한 874회에 걸쳐 원장 등 개인 명의 신용카드로 결제한 영수증을 유치원 회계 증빙서에 첨부해 3000여만 원을 유치원회계에서 개인 계좌로 입금했다.
환희유치원 원장은 결국 2017년 교육청으로부터 ‘파면’ 처분을 받았지만 유치원을 떠나지 않았다. 원장직을 공석으로 남기고 총괄부장을 맡으며 유치원을 운영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지난 1년 동안 학부모들은 원장의 파면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가족 경영의 추한 민낯
이번에 각 지방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감사 결과는 전국 모든 유치원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는 아니다. 17개 시도교육청이 2014년 이후 자체 기준에 따라 일부 유치원을 선별해 실시한 감사 결과다. 교육청의 행정처분은 시정→ 주의→ 경고→ 경징계(견책, 감봉 1~3월), 중징계(정직 1~3월, 해임, 파면) 순으로 무겁다. 대부분의 유치원이 시정·주의·경고 등 경미한 처분을 받았기에 모두를 ‘비리 유치원’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형식적 감사와 솜방망이 처벌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처분 강도가 약하다고 해서 비리 수위가 낮다고 간주하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대부분이 회계 집행과 관련된 부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서울·인천·경기 세 군데만 보더라도 ‘회계관리 부실’에 따른 적발 사안이 가장 많다.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대상 유치원은 총 74곳(국공립 30, 사립 44)이고, 경기도교육청은 116곳(국공립 38, 사립 78), 인천교육청은 200곳(전체 사립)이다. 이 중 예산·회계 분야 적발 건수가 월등히 많다. 교육청에서 자체적으로 적발 내용을 분류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유치원 운영비를 ‘개인용도 사용’으로 부적절하게 썼음을 알 수 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유치원 회계를 설립자나 원장이 개인 용도로 쓰거나, 관련 증빙서류 없이 유치원 회계를 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유치원 돈을 자신의 쌈짓돈으로 사용한 곳은 환희유치원 외에도 매우 많다. 서울 M유치원의 경우 설립자 겸 원장은 렌터카 업체에서 개인 용도로 차량을 빌린 뒤 3년 6개월 동안 유치원 회계에서 ‘승용차 사용료’ 명목으로 4100만 원을 빼갔다. 주유비 명목으로는 710만 원, 심지어 과속으로 발생한 과태료도 유치원비로 해결했다.
설립자나 원장 개인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에게도 유치원 돈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원장이나 설립자가 자신의 가족을 직원으로 채용하거나, 가짜 서류를 꾸며 입금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또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와 유치원이 계약을 맺는 방식 등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경기 동탄 D유치원은 ‘교직원 급여 과다지급’으로 경고 처분을 받았는데, 설립자의 아들이 원장으로 일하면서 기본급으로 월 2000만 원을, 행정실장인 설립자의 배우자가 월 1000만 원을 받았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더라도 다른 교직원과의 형평성이 심각하게 어긋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경기 남양주 S유치원은 가짜 지출서류를 작성해서 유치원과 아무 관련도 없는 설립자 부친에게 2억 원을, 설립자 장인에게 840만 원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화성 L유치원은 설립자 자녀가 소유한 체험학습장 부지에 대해 3년간 임대차계약을 맺고 다른 체험장보다 훨씬 많은 임차료를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징계 처분을 받았다.
‘사유재산 공적이용료’ 당당하게 빼가
이처럼 사립유치원에서 회계 부정이 밥 먹듯이 일어나는 건 유치원 설립자(원장)들이 유치원을 ‘사유재산’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입·세출예산 편성 시 설립자에게 사유재산 이용에 따른 대가를 지급할 수 있도록 ‘공적이용료’ 항목을 임의로 만들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이 많다. 서울 N유치원은 설립자에게 사유재산 이용에 따른 대가를 지급할 수 있도록 운영비 과목 중 공통운영비목에 ‘설립자 사유재산 공적이용료’로 매달 200만 원씩 지급했다. 또한 사립유치원은 건축적립금과 퇴직적립금 외 다른 적립금을 창설할 수 없음에도 ‘원아 시설적립금’ 명목으로 설립자 명의의 별도 계좌를 개설해 매월 250만 원씩을 납입하기도 했다.
인천 P유치원도 ‘사유재산 공적이용료’ 명목으로 12차례에 걸쳐 총 1억3200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 유치원을 개인 재산으로 세운 만큼 설립자에게 건물 이용료 등 일정 수준의 이익을 보장하라는 게 현재 사립유치원 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교육청은 이에 대해 “현행 관련 법규와 세출예산 과목으로 편성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에서 ‘공적이용료’를 이유로 적발된 사립유치원은 서울·경기·인천에서만 32곳이다.
또한 시설적립금 명목으로 장기적립식 연금보험에 가입한 유치원도 여럿 적발됐다. 서울 C유치원은 시설적립금 명목으로 10년 납입 보험에 가입한 뒤 유치원회계에서 매월 148만 원씩 총 1억794만 원을 적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울 S유치원은 건물 증·개축 및 전면보수 명목으로 유치원회계에서 피보험자를 원장 또는 원장의 배우자 명의로 한 연금 보험 1건과 저축보험 2건을 가입하고, 월 825만 원씩 총 1억6900여만 원을 납입했다.
“급식이 돈 남기기 가장 쉬워”
한 사립유치원에서 원아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 [동아DB]
아이들 안전과 직결되는 급식 관련 비리도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 F유치원은 3년에 걸쳐 식자재 구입비(3억1300만 원) 등에 따른 세금계산서를 한 번도 받지 않았고, 일부 거래업체로부터 받은 계산서도 1983년 개원 이래 관할 세무서에 신고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급식비 등 수익자부담 경비를 학부모에게 징수할 때는 반드시 유치원운영위원회 자문을 거치고 수익자부담경비를 징수하는 이유, 적정성, 징수금액 책정 근거 등을 설명해야 하지만 F유치원은 정확한 산출 근거 없이 1인당 급식비를 월 6만 원씩, 방학 기간에도 동일하게 받았다.
유치원에 식자재를 납품할 자격이 없는 업체와 거래한 유치원도 있었다. 집단급식의 경우 식품위생법에 따라 ‘집단급식소 식품판매업’ 신고를 한 업체를 통해 식재료를 구매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서울 H유치원은 3년에 걸쳐 1억8700여만 원어치의 식재료를 집단급식소 식품판매업에 등록돼 있지 않은 곳에서 계산서를 받지도 않고 거래했다.
유치원 급식 문제는 사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늘 있어온 불만 사항 중 하나다. 유치원 감사 결과 발표 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을 보더라도 급식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두부 2모로 50명이 먹을 국을 끓였다’는 증언부터, ‘아이들 식자재를 원장 집으로 가져가거나 부실 식자재를 써 돈을 모은다’는 식의 증언이 줄을 이었다. 자기 집 제사상에 올릴 문어와 술을 급식비로 산 원장도 있었다.
최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와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어린이집 보육교사 2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 중 72%가 ‘식자재 구매 등 급식 비리 정황을 목격하거나 경험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부정은 어린이집뿐 아니라 유치원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C씨는 “유치원에서 가장 쉽게 돈을 남겨 먹을 수 있는 게 급식비”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유치원이 월말 혹은 월초에 학부모에게 미리 한 달치 식단을 공개하지만, 비슷한 재료로 대체하거나 아예 다른 반찬이 나올 때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입이 짧은 아이를 위해 학부모가 따로 보내는 간식과 과일로 원 전체 아이들이 나눠 먹기도 하고, 교사 앞으로 들어온 빵 등을 그날 간식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C씨는 “편식하거나 입이 짧은 아이들도 고기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면 잘 먹는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급식 과정이 불투명하다 보니 식자재 업체와의 ‘뒷돈 거래’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C씨는 “세금계산서를 끊지 않고 거래하는 유치원은 대부분 리베이트를 받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급식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 대부분에서 관련업자들과 암묵적 거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현금으로 원장에게 직접 주기 때문에 감사에서도 해당 내용이 밝혀지기가 쉽지 않다.
이번 비리 사립유치원 파동에서 리베이트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을 잡기 쉽지 않은 것. 그럼에도 이번 교육청 감사에서는 인천에서만 6건의 리베이트 사례가 적발됐다. 액수의 차이만 있을 뿐, 유치원마다 양상은 비슷했다. 인천 I유치원은 교재를 납품받은 것처럼 대금을 결제한 뒤 차명계좌나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방법으로 4차례에 걸쳐 2251만 원을 챙겼다.
“교재비 30% 리베이트로 내놔라”
‘신동아’ 취재 결과, 특성화활동 교구·교재 구입 과정에서 일어나는 ‘뒷돈 거래’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 시도교육청의 사립유치원에 대한 특정감사가 2015년 처음 실시된 것도 ‘특성화 교재교구 업체로부터의 리베이트 수수 문제’에 대한 민원 때문이었다. 당시 교육부 등을 통해 해당 민원이 여러 건 접수되자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 직접 나서 각 시도교육청에 “사립유치원의 허위 납품 서류 발행 및 외부 강의 리베이트 활용 등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특성화 교육은 누리과정(하루 4~5시간) 외에 진행되는 수업으로 보통 외부 강사를 초빙해 영어, 음악, 체육, 미술 등을 가르친다. 특성화교육비는 매달 학부모가 전액 부담하는데, 이 돈으로 유치원은 특성화 교육에 사용되는 아이들 교구나 교재를 구입할 수 있다. 사립유치원 수업료는 유아교육법시행규칙 제6조에 의해 유치원 교육과정 교육비, 방과후과정교육비, 수익자부담경비(수혜성경비), 특성화활동비 등으로 나뉘고, 모든 경비는 유치원 원장이 정해 해당 내용을 교육청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특성화활동 교구 및 교재를 납품하는 K씨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매달 교재 납품 업체로부터 일정 금액의 리베이트를 상납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립유치원의 경우 교구·교재 구입비의 30% 정도가 리베이트로 사용된다고 한다. K씨는 “원아가 300명 정도 되는 유치원의 경우, 원아 1명당 1만 원이 조금 넘는 교재나 교구를 3개씩 구매한다고 치면, 그 비용만 1000만 원이다. 이 중 300만 원을 원장에게 현금으로 가져다준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리베이트는 오래전부터 관행으로 자리 잡아 원장들 또한 당연한 ‘수익’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만약 업체 측에서 이를 거부할 경우 교재 납품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K씨는 “유치원 하나를 뚫으려면 보통 정성이 필요한 게 아니다. 아무리 교재의 질이 좋아도 리베이트 없이 영업하기 쉽지 않다. 노골적으로 ‘얼마 줄 거냐’고 묻는 원장도 많다”고 폭로했다.
한편 특성화활동을 누리과정 시간에 진행하는 건 불법이다. 수업 과목 수도 4개 이하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일부 유치원들은 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학부모들이 원해서”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 바쁜 것. 현재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등 사립유치원들은 특성화활동을 들어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유아교육 전문가는 “많은 사립유치원이 보다 많은 영리를 취하기 위해 특성화활동 규제를 풀어달라고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지만 놀이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성화활동은 규제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발당한 유치원은 공개 못 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교육청-유치원 유착’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각 시도교육청의 비리 유치원 공개 방식 또한 많은 이를 공분케 만든다. 유치원 감사에서 최고 수위의 징계인 ‘고발(수사의뢰)’ 조치를 받은 유치원의 이름과 적발 내용이 일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교육청들은 “아직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내용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감사 결과를 발표해 비리 유치원을 근절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임은 물론이고, 감사 결과 명단에 이름을 올린 타 유치원 입장에서도 분명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교육청 중에는 감사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 중인 유치원도 감사 보고서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해 서울 사립유치원 한 원장은 “단순한 회계상의 실수로 주의·경고를 받은 유치원만 졸지에 ‘비리 유치원’으로 전락하고,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곳은 오히려 교육청이 나서서 감싸주는 형국”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그는 “앞으로 감사에서 빠져나가려면 돈이 들더라도 변호사를 사서 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면 되는 것 아니겠냐”며 어이없어했다.
이번 유치원 감사 결과 전국 시도교육청으로부터 고발당한 유치원은 총 42곳이다. 지역별로는 서울 4곳, 경기 18곳, 인천 2곳, 대전 4곳, 충북 1곳, 대구 1곳, 경북 1곳, 부산 6곳, 제주 3곳, 강원 1곳, 울산 1곳 등이다. 나머지 교육청(세종·전북·전남·경남·광주)은 고발 건수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교육청은 고발 사안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이들 중 고발 조치당한 유치원을 공개한 교육청은 서울시교육청이 유일하다. 서울시교육청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4개 유치원을 고발했는데, 검찰 조사에서 4곳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후 항고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고 설명했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고발 건수가 가장 많은 만큼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인 곳이 여럿 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이 발표한 ‘2017 시민감사 활동보고서’에는 ‘수사 의뢰한 사립유치원 현황’이 무기명으로 명시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청으로부터 고발 조치당한 유치원은 구리·남양주 2곳, 안산 2곳, 광명 1곳, 김포 1곳, 파주 2곳, 용인 2곳, 성남 1곳, 수원 2곳, 이천 1곳, 부천 3곳, 안양·과천 1곳 등 총 18개다.
이들 중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교비를 편취한 곳이 가장 눈에 띈다. 구리·남양주에 있는 이 유치원은 검찰 수사 결과 10개의 유령회사를 통해 100억 원 규모의 교재비를 부풀려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에 가담한 유치원 원장은 수도권과 충청 지역을 통틀어 총 50명이나 된다. 원생 1만900여 명이 피해를 본 셈이다.
보고서에 명시돼 있는 또 다른 수사 의뢰 사유는 ‘특정업체와 독점거래, 무단설립자 변경’ ‘설립자 어학원으로 부당 인출’ ‘설립자 소유 타 유치원 회계 집행’ ‘감사 거부 및 방해, 소명 거부, 은닉 통장 거래 등에 의해 감사를 진행할 수 없었을 경우’ 등이다. 당시 사립유치원 감사에 참여했던 한 시민 감사관은 “부천에 있는 유치원의 경우 횡령과 배임이 분명해 보였지만, 검찰 조사에서는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그때 교육청이 항고하지 않은 게 아직도 한스럽다”고 말했다.
2부 | 누리과정은 어떻게 탄생했나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를 비롯한 다수의 사립유치원은 ‘유치원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이덕선 한유총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개인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설립자의 재산권과 이익 추구를 보장해줘야 한다. 학교에서나 적용되는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사립유치원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그는 사립유치원에 비리가 많은 이유도 투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개인의 땅과 건물 사용에 대한 임대료, 설립자(원장)의 상시 출근에 대한 합당한 급여, 설립자에 대한 연간 인센티브와 같은 개인 재산권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유치원은 비영리교육기관’임을 강조한다. 유치원은 사학기관으로 학교는 개인의 사적 영리 대상이 아닌, 공공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현재 사립유치원은 유아교육법 제8조(유치원의 설립 등)에 의해 설립할 수 있다. 사립유치원도 교육기본법에 따라 설립되는 ‘학교’의 일종이며 교육기본법에 따라 ‘공공성’을 가진다. 또한 사립유치원은 시설을 갖추고 공공성을 지킬 것을 전제로 교육감의 ‘인가’를 받아 설치되는 학교이며 영리시설이 아니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도 한 가지 맹점은 있다. 그동안 정부는 사립 초·중·고·대학과 사립유치원을 구별해온 게 사실이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사립학교의 설립 및 운영은 학교법인만 할 수 있다. 반면 사립유치원은 개인 설립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배경에는 1981년 수립한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이 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유치원 취학률을 38%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교사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한시적으로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861개이던 사립유치원 수는 1987년 3233개로 급격히 늘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립유치원 사업자들은 “우리가 정부를 대신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공 유아교육 체계를 세웠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관리감독을 하는 건 맞지 않다”며 정부 감사에 강력히 반발한다. 지난해 경기도 내 일부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유치원 특별감사팀’을 꾸리고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감사관 등을 직권남용·협박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립유치원을 더 이상 ‘사인이 운영하는 생계형 개인사업자’로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7년간 사립유치원에 막대한 나랏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2012년 개정된 유아교육법 제24조에는 ‘초등학교 취학 직전 3년의 유아교육은 무상으로 실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해당 비용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되, 유아의 보호자에게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것이 바로 ‘누리과정 예산’의 일부다.
그럼에도 그동안 사립유치원의 회계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법령에 명시돼 있는 것처럼 무상보육 비용이 ‘보조금’이 아니라 ‘지원금’이라는 데 있다. 보조금은 정부가 유치원에 직접 주는 돈으로 회계감사 대상이 되는 반면, 지원금은 학부모에게 주는 돈이라 차후 이 돈으로 유치원비를 결제하면 그 돈은 유치원 소유가 된다. 따라서 이 돈을 유치원장이 사적으로 사용해도 사유재산으로 인정돼 횡령죄를 물을 수 없다. 그동안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교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더라도 전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당초 정부가 감사 가능한 보조금을 선택하지 않고 지원금으로 확정한 이유는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였다. 현재 정부는 해당 비용을 카드(아이행복카드) 결제 방식으로 학부모에게 지원하고 있다.
최순영 경기도교육청 대표 시민감사관은 “처음 입법 단계에서부터 국회가 사립유치원장들이 가만히 앉아서 돈을 타낼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사립유치원의 로비가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번 기회에 무상보육 비용을 보조금으로 바꿔 철저한 회계 감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리과정 예산 오를수록 원비도 껑충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전국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이 10월 30일 오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비공개 토론회에 검은색 옷을 입고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누리과정이란 공통 교육과정을 만들어 어린이집과 유치원 과정을 하나로 통합하고, 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을 줄여줘 저출산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탄생했다. 현재 정부는 사립유치원 원아 1인당 29만 원씩 누리과정 지원금(학비 22만 원, 방과후과정비 7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또 공립 유치원 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사립유치원 담임교사의 처우개선비(교직수당 25만 원, 인건비 보조 15만 원, 담임수당 13만 원)도 매달 정부 재정에서 지원한다. 원감, 방과 후 과정 담당교사는 각각 40만 원을 받는다. 원아 급식비도 하루 2600원씩 지원하고 있고, 학급운영비 25만 원(학급당 평균), 교사연수비용 등 현재 전국 사립유치원에 1년 투입되는 교육 예산은 2조 원이 넘는다.
누리과정은 2010년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내건 무상급식 공약에 이어 무상복지가 정치권의 화두가 되던 시기에 태동했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야권의 무상급식에 맞설 무기로 누리과정이라는 이름의 무상보육을 들고 나왔다. 당시 정부는 “내년부터 만 5세 모든 아동이 어떤 교육기관에 다니든 똑같이 질 높은 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2012년 만 5세 아동을 대상으로 누리과정이 처음 시도됐고, 이후 2013년부터 만 3~4세까지 확대 적용했다. 현재는 만 3~5세 아동이 무상보육 대상자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만 3~5세뿐 아니라 0~2세에게도 보육료를 지원하는 ‘0~5세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를 공약으로 들고 나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리과정의 최대 수혜자는 아이나 부모가 아닌 사립유치원장이라는 걸 부인하기 힘들게 됐다. 해마다 늘어난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사립유치원의 원비는 계속 올라 결국 학부모 부담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유치원비는 연평균 6% 이상 올랐고, 누리과정이 3~4세까지 확대된 2013년에는 사립유치원 원비가 전년 대비 평균 6.9%나 올랐다. 2012년 교육부는 누리과정 확대에 앞서 정부의 유아 학비 지원이 실질적인 학부모 부담 경감으로 이어지도록 전국 유치원에 원비 동결을 유도하는 ‘유치원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이듬해 유치원 정보공시 웹사이트인 ‘유치원 알리미’를 통한 조사 결과, 전국 사립유치원의 80.2%가 정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치원비를 평균 16.2%나 올렸다. 많은 이가 누리과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가장 큰 이유다.
툭하면 ‘휴·폐원’ 내세우며 요구 관철
당초 유아교육의 무상교육을 주장한 집단은 다름 아닌 한유총이다. 1996년 9월 설립된 한유총은 1997년 1월 ‘5세아 무상교육 150만 서명운동’을 개시해 6개월 만인 같은 해 7월 ‘교육법 만 5세아 무상교육’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또한 1년 뒤인 1998년 9월에는 유아교육진흥법을 개정했고, 2000년 3월에는 국비 최초로 사립유치원 교재·교구비 지원을 이끌어냈다. 해당 내용들은 한유총 온라인 홈페이지 내 ‘연혁’란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한유총은 당시 무상보육과 국비 지원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사립유치원의 공적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한유총은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사유재산권 보장을 내세우며 밥그릇 챙기기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기업형 유치원’의 경우 영리 추구 의지가 더욱 노골적이다. 따라서 각 시도교육청은 2020년까지 진행되는 ‘전국 유치원 전수조사’에서 한 명의 설립자가 여러 개의 유치원을 운영하는 경우 우선 감사 대상으로 삼을 예정이다. 경기도 용인 지역에는 경기도 관내에 10개, 서울에 6개 등 총 16개 사립유치원을 거느린 사업자가 있다. 이곳 이외에도 유치원을 3~4개 운영하는 사업자가 한둘이 아니다. 경기도 동탄 지역에서 사립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최모 씨는 “엄마들 사이에서 이름이 좀 난 유치원들은 거의 다 기업형으로 운영되는 곳”이라고 귀띔했다.
사립유치원 원장들 사이에서도 기업형 유치원에 대한 반감은 크다. 서울지역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교육철학 없이 오로지 돈에 눈이 멀어 문어발식으로 유치원을 운영하는 곳이 많다. 서울에도 부부가 유치원 5개를 운영하면서 한 곳당 월 임대료(사유재산 공적이용료)를 900만 원씩 받는 사례가 있다. 그 돈을 유치원 운영비에서 충당하려면 편법을 쓸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며 씁쓸해했다.
최근 몇 년을 돌이켜보더라도 정부와 사립유치원의 싸움에서 승자는 늘 사립유치원이었다. 이들은 주로 ‘집단 휴원’을 무기로 내세워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했다. 2016년 6월에는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집단 휴원을 예고한 바 있다. 당시 교육부는 보육 대란을 우려해 사립유치원에 대한 급식비·차량운영비 등 관련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밝히며 갈등을 봉합했다. 지난해 9월에도 한유총은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 폐기와 정부 재정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집단휴업을 예고했다가 철회했다. 이때도 교육부는 당장 아이를 맡길 곳 없는 학부모들을 고려해 한유총과의 협상에서 사립유치원 유아학비 지원금 인상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사립유치원의 정치적 카르텔(Cartel)은 그 어떤 집단보다 강하다.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대안마련 정책 토론회’에서 박용진 의원이 동료 정치인들에게 “같은 당으로서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한 것을 보더라도 정치권과 사립유치원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날 박 의원은 “광역·기초의원 등 지역에서 정치하는 분들은 유치원연합회와 수시로 간담회를 갖고 정책을 협의해야 하는데 이렇게 연합회를 건드려놓아서, 그분들이 뒷감당할 부분을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밝혔다. 사립유치원의 회계 비리가 이제야 수면으로 드러났지만, 이미 지역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묵인해온 ‘담합’의 결과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박 의원은 비리유치원 공개 후 “다음 선거는 기대도 하지 말아라” 등의 협박성 문자를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정치인 쥐락펴락 하는 사립유치원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인 이찬진 변호사는 “박 의원이 한 일은 지역 내 카르텔을 흔든 것으로 다선 의원이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평했다. 이어 그는 “지금도 지역구 의원들은 어느 편에 서는 게 좋을지 갈등이 크겠지만 온 국민이 사립유치원 문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만큼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태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립유치원과 정치계에 흐르고 있던 침묵의 카르텔을 반드시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부터 법안 마련이나 후원금 등 사립유치원의 대국회 업무가 활발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신학용 전 국회의원의 ‘입법 로비’ 사건이 대표적이다. 19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신 전 의원은 법안 발의 대가로 한유총으로부터 306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7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2013년 신 전 의원은 사립유치원의 상속·양도를 손쉽게 하고 사립유치원에 특화된 재무회계제도를 신설하는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는 당시 석호현 한유총 회장이 직접 만든 법안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사립유치원 사업자들의 숙원이 담겨 있었다. 한편 이 법안에는 총 34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 중에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황우여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 등이 포함돼 있다.
해당 법안은 신 의원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자진 철회됐다. 한편 신 전 의원에게 뇌물을 건넨 석 전 회장은 뇌물공여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고도 여전히 정치권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화성시장 선거에 출마한 바 있다.
18대 국회에서 4년간 국회 교육위 소속이었던 한 의원은 “한유총과 정치권의 결탁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대선 기간에 한유총이 유치원 관계자들에게 특정 정당의 선거인을 모집한다는 단체 문자를 보낸다거나, 지역 여론을 무기로 은근히 압력을 넣는 식의 만행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부가 질타받아야 하는 이유
11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유피아(유치원+마피아) 3법 정기국회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사립유치원 사태의 책임을 당사자인 유치원 쪽에만 지우는 건 무리가 있다. 그동안 방관자 혹은 동조자 노릇을 했던 정부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 최순영 경기도교육청 대표 시민감사관은 “누리과정 도입 단계에서부터 사립유치원이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열어준 게 국회와 정부다. 그동안 책임을 방조한 교육부의 잘못도 크다”고 질책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은 95개소 어린이집·유치원을 특정감사한 후 ‘유치원 어린이집 실태점검 결과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그 발표 안에는 이번에 교육부가 발표한 국가회계관리시스템 도입, 교원인사관리시스템· 설립자 등 교직원 급여기준 공시지침 마련, 지원금 환수 등 처벌규정 마련 등과 같은 내용이 이미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다 돼가도록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또한 교육부는 지난 7월,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정부법인공단과 서울 고검 송무과에 ‘감사적발 유치원 명단 공개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해 공개해도 된다는 답을 얻었음에도 이번 비리 유치원 사태가 촉발되기 전까지 일체의 추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정치하는엄마들 김신애 활동가는 “교육부는 한유총이 여론의 비난을 받는 동안 유아교육 파탄의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기는커녕, 마치 사립유치원 비리 행태를 전혀 몰랐던 것처럼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그동안 교육부가 한유총의 집단행동을 눈감아준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앞서 한유총은 교육부가 주최한 유아교육 세미나·공청회에서 수차례 물리력을 행사했다. 국공립유치원을 늘리고 사립유치원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정부 정책을 저지하려는 의도였다. 이 점을 근거로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10월 30일 한유총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정치하는엄마들 법률팀 류하경 변호사는 “만약 일반인이 그랬으면 현행범으로 체포될 만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한유총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고 방관자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3부 | 갈 길 먼 국공립유치원, 이번엔 제발!
세금이 투입된 곳에 ‘감사’와 ‘처벌’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감사 인력 부족,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의 저항으로 제대로 된 감사를 실시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감사 후 심각한 부정행위가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만 내릴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효성 있는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감사에서 중징계를 받지 않는 이상, 사립유치원들이 사적으로 유용하고 빼돌린 지원금은 그 액수만큼 유치원 계좌에 다시 옮겨놓기(보전)만 하면 된다. 심지어 서류 조작 등을 통해 거짓으로 타낸 돈도 다시 정부에 돌려주면 그만이다. 누리과정 지원금은 사실상 ‘보조금’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지원금’으로 분류돼 사립학교 경영자의 소유로 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근 교육청 감사에서 서울 4곳, 경기 17곳이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박용진 의원은 10월 23일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명 ‘박용진 3법’으로 이름 붙은 이 법이 통과되면 누리 과정비는 보조금관리법에 따라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목적 외에 돈을 쓴 설립자 혹은 원장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박용진 3법’은 △사립유치원 회계관리시스템 ‘에듀파인’ 사용 의무화(유아교육법) △유치원 설립자의 원장 겸직 금지(사립학교법) △학교급식 대상에 유치원 포함(학교급식법) 등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영형 유치원, 중·고교 부지 단설유치원 합리적
11월 6일 오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주최로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근절 및 공공성 강화를 위한 열린간담회’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에듀파인은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국공립유치원에서 쓰고 있는 시스템으로 물품구입비, 급식운영비, 학생복지비, 교과활동비, 체험활동비, 외부 강사료, 시설비 등 돈이 드는 모든 일을 기록하는 국가관리회계시스템이다. 에듀파인에 기록한 회계 내역은 교육 당국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회계 부정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어린이집은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사립유치원들은 여전히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사유재산 공적사용료가 인정되지 않아’ 현행 법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교육부는 10월 25일 당정합의로 도출된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당초 국정과제인 ‘국·공립유치원 40% 달성’(현재 25.5%)을 조기에 추진하기로 했다. 기존 500학급의 두 배인 1000학급을 신설 혹은 증설하고 부모협동형, 매입형, 장기임대형, 공영형 등 다양한 형태의 국공립유치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공립유치원 확충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돈(재정)이다. 서울 기준 공립 단설유치원 1곳을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00억 원에 달한다. 이에 정부는 단설유치원뿐만 아니라 병설유치원에 학급수를 증설하거나 사립유치원을 법인화하는 방법도 추진 중이다.
실제로 교육부는 교육공공화 강화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지난해 초 ‘공공형 사립유치원’이라는 독자적인 모델을 선보인 바 있다. 공공형(공영형) 모델은 사립에 공립 수준의 지원을 해주는 것인데, 단 유치원 설립자가 개인재산을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설과 인력은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정부는 1곳당 8억 원 정도만 투자하면 된다. 특히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유치원의 경우 공공형 유치원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로 발전해나갈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만한 성과는 없다. 교육부는 지난해 5월 국정기획자문위 업무보고서에서 ‘공공형 사립유치원을 5년 안에 1330개 학급 확보하겠다’고 보고했지만 실상은 서울 4곳, 대구 1곳 등 5곳이 전부다. 이 역시 각 해당 지역 교육청에서 지원한 것으로 교육부가 직접 전환에 성공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문제는 설립자들이 법인 전환에 거부감을 갖는것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사립유치원 4282곳 중 법인이 운영하는 곳은 515곳(5.7%)에 불과하다. 사립유치원 설립자 대부분은 공공형 모델에 참여하려면 개인재산을 내놓고 수익용 기본재산까지 출연해야 해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 결국 교육부는 지난해 말 명칭을 ‘공영형’으로 바꾼 뒤 수익용 재산 출연 규모를 줄이는 등 참여요건을 완화해 사업을 재정비했다. 내년부터 최다 15곳을 운영하는 게 교육부의 목표다.
중·고교 부지에 단설유치원을 설립하는 것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구에서는 2016년부터 중·고등학교에 단설유치원 5개를 개원했다. 10학급짜리 4개, 15학급짜리 1개 등 총 55개 학급이 문을 열었다. 경북고교, 농업마이스터고교, 상원고교, 경상중학교, 삼영초교가 유치원에 공간을 내준 덕분이다. 한 곳당 시설비는 용지 값을 빼고 70억~80억 원이 들었다. 물론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유치원 설립에서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토지 비용을 아낄 수 있고, 무엇보다 도심에서는 부지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용인 J초등학교에 단설유치원 설립을 추진했지만 학교 측의 반대가 심해 끝내 좌초됐다. 경기도교육청의 재정투자심사까지 통과해 90억 원 예산도 확보해놨지만 이 학교의 교장과 학교운영위는 여러 이유를 들어 유치원 공사를 반대했다. J초등학교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유치원생 및 유치원 교육활동으로 인해 초등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학습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이 학교 교원들 역시 3분의 2가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병설유치원을 보더라도 초등학교와 같이 붙어 있지만 아이들 안전이나 교육에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사건을 계기로 학부모들의 생각이 바뀌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학교에 남아도는 교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병설형 단설유치원 추진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 동선이나 교육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협의를 거치고, 또 단설유치원을 허용한 학교에 대해서는 학생 편의시설 등을 마련해주는 등 적당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국공립유치원의 단점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유아공교육의 실효성이 훼손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아이를 유치원에 오래 맡겨야 하는 맞벌이 가정을 중심으로 ‘국공립유치원이 정답은 아니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공립유치원이 사립유치원에 비해 한결 믿음이 가고 보육의 질도 좋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지만, 사립유치원에 비해 수업시간이 워낙 짧고, 방학도 길어 맞벌이 가정엔 ‘언감생심’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국공립유치원 수만 늘리면 맞벌이 가정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과 후 활동이나 야간 돌봄 개설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보면 국공립유치원은 특성화교육, 방과 후 활동을 하지 않을 경우 오후 1시에 하원하는 곳이 많다. 이에 반해 사립유치원은 3시 이후까지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또한 출산율 하락으로 아이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섣불리 국공립유치원을 늘리고 교사를 충원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교사 자리 포화상태로 인해 임용이 늦춰지는 초등학교 예비 교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국공립유치원 보육교사까지 대거 채용할 경우 또 다른 임용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보육대란’에 학부모들은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당장 내년 유치원 입학을 앞둔 학부모들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부는 해마다 사립유치원에 유치원입학관리시스템인 ‘처음학교로’ 참여를 권고하고 있지만 사립유치원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처음학교로는 온라인에서 원서 접수부터 추첨·등록까지 유치원 입학 절차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국 사립유치원이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해마다 온 가족이 유치원 추첨에 동원돼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다. 현재는 국공립유치원만 이 시스템을 사용할 뿐, 사립유치원은 ‘처음학교로를 쓰면 국공립유치원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처음학교로 가입을 거부해왔다. 그럼에도 강제수단이 없어 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사립유치원 비리 파동 이후 교육 당국은 과거와는 다른 방법으로 처음학교로 참여를 강권하고 있다. 내년부터 재정지원과 연계해 학급운영비 등을 차등 지원하는 게 대표적이다. 서울 등 일부 교육청은 처음학교로 미등록 사립유치원을 우선 감사 대상으로 삼고 명단도 공개하는 등 행정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또한 처음학교로를 통한 원아 모집을 제도화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시·도별 관련 조례도 제정할 방침이다. 처음학교로 시행 관련 내용을 일찌감치 밝힌 서울의 경우 전체 사립유치원의 85%가 처음학교로에 가입했다.
“‘처음학교로’ 가입부터 이뤄져야”
유치원입학관리시스템 ‘처음학교로’ 홈페이지. 정부의 가입 강권에도 불구하고 전국 사립유치원 70%가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11월 13일, 아직까지 전국 사립유치원 70%가 처음학교로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전국적으로 사립유치원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는 1096개 사립유치원 중 197곳(17%)만이 처음학교로에 참여했다. 심지어 일부 사립유치원들은 입학설명회도 미루며 원아모집 일정을 늦추고 있다.
몇몇 유치원은 처음학교로 추첨이 끝난 후 원장들끼리 논의를 거쳐 입학 공지를 할 예정이라고 밝혀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특히 경기도 신도시의 기업형 대규모 사립유치원 중에는 학부모가 입학설명회를 들어야만 추첨권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사립유치원들의 일방적인 휴·폐원이다. ‘환희유치원 파문’ 이후 학부모들로 구성된 ‘동탄유치원사태 비상대책위원회’는 11월 8일 경기도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립유치원들이 휴폐원을 운운하고 입학 공지를 의도적으로 늦추는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며 “사립유치원들은 당장 ‘처음학교로’에 참여하고 내년도 입학 공지를 바로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교육 당국도 일선 교육청에 모집 일정을 늦추는 유치원들을 모니터링하고 조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한유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공무원들이 처음학교로·에듀파인을 이용하라고 강권하는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이라고 맞서고 있다. 오랫동안 곪고 곪아 드디어 터진 유아교육 문제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귀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떤 이유에서도 아이들이 볼모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8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