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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확인도 전에 “여혐 폭행” 낙인… 가짜뉴스 불지른 靑청원

입력 | 2018-11-17 03:00:00

성대결 논란 ‘이수역 폭행’의 진실




이른바 ‘이수역 폭행사건’은 ‘화장을 안 하고 머리가 짧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성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취지의 인터넷 글 때문에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여성 비하와는 무관한 사건으로 밝혀지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여성 측이 먼저 시비를 걸었고 남성의 손을 친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들의 억울한 사정을 듣기 위해 만들어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오히려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창구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여성 일행이 먼저 시비 걸고 신체 접촉”

이 사건이 처음 알려진 건 피해자라고 주장한 여성이 14일 오후 5시경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같은 날 오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같은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 커뮤니티 글에서는 “주점에서 언니와 둘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의 커플이 지속적으로 저희를 쳐다봤다”는 게 시비의 발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무 관련 없는 남자 5명이 말싸움에 끼어들어 커플 테이블과 합세해서 우리를 비난하고 공격했다” “남자들이 ‘말로만 듣던 메갈(남성 혐오 사이트)× 실제로 본다’ 등 인신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청원 게시판 글에는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단 이유만으로 (여성) 피해자 두 명은 남자 5명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가해자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이를 본 일부 연예인, 정치인 등이 ‘여성 혐오 범죄가 일어났다’는 글을 게시하며 불에 기름을 부었다. 사흘 만에 34만 명이 넘는 사람이 여성 비하 사건이라고 믿고 분노하며 강력 처벌에 동의했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 결과는 이와 상반된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16일 브리핑에서 “여성들이 큰 소리로 소란을 피웠고 이 과정에서 남녀 커플이 쳐다보자 여성들이 ‘뭘 쳐다보냐’고 하다가 말다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여성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먼저 신체 접촉을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여성 일행이 먼저 남성들에게 신체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주점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안 가고 뭐 하냐”며 시비를 걸었고, 여성 1명이 먼저 남성의 손을 쳤다는 것이다. 이후 폭행 과정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A 씨(21) 등 20대 남성 3명과 B 씨(23·여)를 폭행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 “언론의 검증 기능 중요”

사건 당사자에 대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브리핑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당사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글 때문에 논란이 거세졌고 확인되지 않은 영상이나 이야기가 많이 돌아 자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벌어진 주점은 14일 오후부터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주점 직원 C 씨는 “젊은 여성들이 전화를 걸어 ‘한남충’ ‘미친놈’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며 “물리적인 테러를 가할까 봐 굉장히 겁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주장이 사실 확인 없이 유포돼 ‘마녀사냥’으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내 아이가 버스에서 내리기에 하차를 요구했지만 세워주지 않았다’며 240번 버스 운전사를 고발한 내용의 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되며 논란이 거셌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김포 어린이집 사건’도 맘카페에 올라온 확인되지 않은 글이 발단이 돼 여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청와대 게시판에도 언제든 가짜뉴스가 올라올 수 있다”면서 “이번 사건처럼 언론이 제대로 사실을 확인해 ‘조기 진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