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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들과 오찬 이낙연총리 “네 가지 감사, 세 가지 경청”

입력 | 2018-11-17 03:00:00

경제보폭 확대… 이례적 간담회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16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의 오찬에 앞서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장(왼쪽) 등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날 이 총리는 금융회사가 핀테크 기업을 보유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에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뉴스1

“감사드릴 게 네 가지고, 말씀 듣고 싶은 것이 세 가지입니다.”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서울공관에 은행장을 초청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은행장들을 직접 오찬 장소로 안내한 이 총리는 “여러분을 모시게 된 것은 일부 관행적인 생각처럼 당부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그런 염려가 있다면 지금 나가셔도 됩니다”고 인사말을 시작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메모를 준비하던 일부 은행장은 펜을 내려놓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총리는 “평소엔 늘 한식 중심으로 먹지만 오늘은 돈을 많이 가지신 분들이어서 양식으로 준비했다. 손님 덕에 양식을 먹게 생겼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날 오찬간담회에는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장과 은행장 15명이 참석했다.

이 총리는 먼저 은행장들에게 ‘네 가지 감사할 일’로 △정부 경제운영 협력 △중견·중소기업 지원 확대 △취약계층 서민 지원 확대 △금융기관 공익재단 활동을 꼽았다. 이 총리는 “내외 경제 여건이 동시에 안 좋은 상황인데, 여러분께서 국내 경제의 피가 돌게 해주시고, 또 정부의 경제 운영에 협력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이 총리는 세 가지 ‘듣고 싶은 말씀’으로 은행별 4차 산업혁명 대응 노력과 함께 이를 위한 정부의 지원, 경제운영 방향에 대한 조언을 당부했다. 금융혁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성장의 대표적인 과제로 강조해온 분야다. 최근 직접 규제혁신 성과보고를 받고 있는 이 총리가 은행장들로부터 핀테크, 빅데이터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애로를 직접 확인하고 나선 것이다.

은행장들은 규제 혁신부터 해외 진출까지 다양한 제언을 내놨다. 한 은행장은 “외국 금융사와 경쟁하려면 디지털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국내 은행들은 핀테크업체를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에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내 은행 등 금융회사는 비(非)금융사인 핀테크 업체 지분을 15%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동아일보가 ‘강한 금융이 강한 경제 만든다’ 시리즈에서 지적한 대표적인 금융 규제 족쇄다.

이 총리는 은행들의 “4차 산업혁명 흐름에 금융도 부응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며 그 자리에서 금융위원회에 관련 규제 검토를 지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총리실과 협의해 관련 법규를 완화하거나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 조선 등을 기반으로 한 지역경제가 어렵다”는 지방은행장들의 의견에 이 총리는 “연내에 조선, 자동차부품 업종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답했다. 이 총리는 또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에 국내 금융사가 진출하면 가능성이 있다”며 “현지 당국이 관련 인가를 빨리 내줄 수 있도록 정부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 은행장이 “은행들이 ‘비 올 때 우산을 뺏는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금융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토로하자 이 총리는 “은행이 돈을 많이 벌면 일반 국민은 자신의 재산을 뺏기는 것으로 느끼고, 반대로 돈을 못 벌면 무능하다고 얘기한다”며 “그건 금융인의 숙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익을 많이 내면 가능한 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며 웃었다.

이날 간담회는 당초 예정 시간을 1시간 반가량 넘겨 오후 2시 반경에야 마무리됐다. 은행장의 건의에 이 총리가 일일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날 회동을 두고 2기 경제팀이 출범한 가운데 경제 분야에서 총리의 보폭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부총리나 금융위원장이 은행장 모임을 가진 적은 있지만 이 총리가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연 것은 처음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총리가 금융권의 현장 이야기를 경청해줬다. 이런 소통의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