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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가격’ 한 방이 필요해

입력 | 2018-11-17 03:00:00

[위클리 리포트]코리아세일페스타, 美 ‘블프’와 中 ‘광군제’처럼 성공하려면…




#1
회사원 박상민 씨(40)는 올해 9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코리아세일페스타(KSF)’가 열린다는 소식에 백화점을 찾았다. 겨울 코트를 사기 위해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대규모 할인 행사라고 했지만 비싸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던 것. 그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수식어를 왜 붙이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2 이달 11일 0시(현지 시간) 중국 상하이(上海)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광군제(光棍節)’ 쇼핑 축제가 시작됐다. 10일 밤부터 시작된 전야제 행사가 끝나고 쇼핑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나온 지 2분 5초 뒤 무대 위 전광판에 ‘100억 위안’(약 1조6257만 원)이라는 표시가 떴다. 100억 위안어치 상품이 팔렸다는 뜻이다.

#3 청소기, 코트, 장난감, 화장품…. 직장인 손의정 씨(38)는 1년 내내 ‘짠순이’ 모드로 살다가 11월 넷째 주 ‘블프’(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첫날 ‘광클’(광속으로 클릭)을 시작한다. 평소 사기 힘든 고가 브랜드 의류나 전자제품을 반값 이하로 살 수 있어서다. 그는 “눈독 들인 상품에 알람을 걸어뒀다가 구매에 성공하면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며 웃었다.

한국, 중국, 미국에서 열렸거나 열릴 대규모 쇼핑 행사에 대한 국내외 소비자들의 반응은 서로 다르다. 일단 KSF는 역사가 짧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존재감이 거의 없다. 오히려 싸지 않은 가격에 불만을 표시하는 소비자들도 나온다. 반면 광군제는 역대 최대 매출을 올리는 등 국내외 소비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곧 시작될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도 국내외 소비자들이 ‘득템 기대감 지수’를 높이며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 ‘미친 할인율’과 상품 구성에 차이

KSF가 블랙프라이데이나 광군제에 비해 인기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깜짝 놀랄 정도로 싼 제품이 없어서다. KSF에 나온 제품 중 일부는 가격 비교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최저가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해외 직구 제품보다 비싼 경우도 허다하다.

올해 KSF에서 대표 할인 상품으로 소개된 유일한 가전제품인 삼성전자 건조기 ‘그랑데’는 할인율이 최대 20%였다. 하지만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두고 미국 전자제품 양판점 베스트바이가 제시한 비슷한 모델의 할인율은 27.8%. 일부 삼성전자 건조기 할인율은 31.6%나 된다. 삼성전자가 한국과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델은 세부 기능이나 디자인 등에서 차이가 있어 가격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할인율의 격차는 적지 않다. 유통업계 입김이 센 미국이 한국보다 가전제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적인 가격 차이는 더 날 수도 있다.

유통 전문가들은 KSF에서 싼 제품을 볼 수 없는 원인을 국내의 독특한 유통 구조에서 찾는다. 한국은 유통업체가 매장을 빌려주고 수수료로 돈을 버는 구조다. 반면 미국은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상품을 사서 판매한다.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유통업체가 재고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파격적인 할인을 해서라도 재고를 소진할 수밖에 없는 셈. 중국도 완전한 직매입 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광군제 참여 업체에 할인 혜택 제공을 의무화하거나 미리 할인 상품 및 프로모션 항목을 결정한 뒤 직매입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격을 떨어뜨린다. 할인 대상 제품 수가 블랙프라이데이나 광군제에 비해 적다는 점도 KSF의 약점이다. 올해 KSF에 참여한 기업은 450여 곳이다. 반면 블랙프라이데이나 광군제에는 대부분의 글로벌 브랜드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 ‘코리안 쇼핑타임’ 설정해야

전문가들은 한국이 블랙프라이데이나 광군제처럼 영향력 있는 쇼핑 축제를 키우려면 명확한 타임라인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블랙프라이데이와 광군제는 할인행사 기간이 확정돼 있는 반면 국내 행사는 업체마다 일정이 제각각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명절과 창사기념일을 중심으로 할인대전을 펼치는 반면 이커머스 업체들은 수시로 ‘타임세일’ 등을 진행하다 보니 쇼핑 대목이라는 인상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초가을에 열리는 KSF는 추석 세일과 연말 세일 사이에 끼인 애매한 모양새로 주목도가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유통업계에서는 쇼핑 대목 기간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있다. 이달 1∼11일 11번가와 이베이코리아는 각각 ‘십일절 페스티벌’과 ‘빅스마일데이’를 열어 흥행에 성공했다. 같은 기간 위메프는 그동안 수시로 진행하던 ‘특가데이’ ‘심야특가’ 등을 통합해 ‘블랙111데이’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비슷한 시기에 대형 이벤트를 열면서 ‘11월 온라인 쇼핑 축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위메프 관계자는 “업체들이 상황에 맞는 이벤트를 하다 보니 온라인으로 전체 소비가 연결됐다”며 “매년 더 많은 업체가 동참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디테일 마케팅에도 신경 써야

11번가가 진행한 할인행사 ‘십일절(11월 1∼11일)’의 모토는 ‘열일한 나에게 선물하다’이다. 11번가의 11을 열일로 발음해, 올 한 해 수고한 스스로에게 선물하라는 뜻으로 붙인 것이다. 중국에서 독신자를 뜻하는 ‘1’이 네 번 들어가는 11월 11일에 맞춰 독신자를 위한 할인행사(광군제)를 시작한 알리바바처럼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덕분에 11번가는 이번 행사에서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쇼핑을 축제로 만드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한경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블랙프라이데이나 박싱데이 등 해외 쇼핑 문화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쇼핑이 주는 일탈과 즐거움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며 “쇼핑을 축제로 만드는 마케팅이 성공의 핵심 열쇠”라고 했다. 최근 들어 소비가 경험이자 문화이자 놀이로 인식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판매 실적 공개 서비스’, ‘타임특가’ 등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마케팅 기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초 할인 이벤트로 매출 신기록을 갈아 치운 이베이코리아가 도입한 실시간 판매 실적 공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베이코리아 측은 “제품 수기 홍수 속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이 서비스를 도입했다”며 “구매자들이 제품 선택에 실적을 참고한 것은 물론이고 쇼핑 축제를 주도한다는 재미를 느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위메프는 타임특가를 적극 활용했다. 이달 1∼11일 투데이특가, 타임특가, 심야특가 등 특정 시간에 할인을 예고한 물품을 띄웠다가 내리는 이벤트를 벌여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잔기술’과 스토리텔링에만 의지해선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유통학회장인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제품 구성과 할인 폭이 매력적이어야 스토리텔링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미끼 상품만 내세우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설 snow@donga.com·송진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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