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닝’ 대자연 속을 뛰는 사람들
1년에 사하라(나미비아)와 고비(몽골), 아타카마(칠레)에 이어 남극까지 ‘극한’ 사막마라톤 4개를 완주하는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허곽청신 씨와 유동현, 최홍석 씨(왼쪽부터)가 9월 아타카마사막마라톤에서 함께 질주하다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25일 남극마라톤에 출전해 그랜드슬램을 완성할 계획이다. 최홍석 씨 제공
2000년대 초반부터 사막과 산악 등 오지를 달려온 국내 트레일러닝의 선구자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47)는 “도심 속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연의 참맛을 체험하고 싶어서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연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몇 시간씩 달리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도로를 달리는 것과는 천지 차이의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트레일러닝은 산과 들, 사막 등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거나 걷는 운동으로 전 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을 두고 있다. 과거 산악마라톤과 사막마라톤이 따로 불렸는데 모두 트레일러닝 범주에 포함이 됐다. 유 대표는 “2012년 국제트레일러닝협회가 생기면서 중구난방 열리던 대회를 트레일러닝으로 통합했다. 대회 이름은 다양하지만 개념은 모두 트레일러닝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2016년 건강을 다지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 남 씨는 지인의 권유로 트레일러닝에 빠지게 됐다. “이제 막 10km를 완주할 정도였는데 50km의 산길을 달리자고 했다. 너무 재미있다고. 처음엔 망설였다. 장거리라 부담이 됐다. ‘출발하면 어떻게든 달린다’고 해 그해 여름 DMZ 울트라트레일러닝 50km에 신청했고 진짜 완주했다.” 7시간 20분. 첫 완주 치고는 좋은 기록이었다. 남 씨는 “힘들 줄 알았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달리다 힘들면 걷는다. 오르막은 주로 걷는다. 본래 겁이 없는 성격이었는데 내리막길을 달리는 게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혹 다칠까 봐 내리막을 천천히 달리는데 난 빠르게 질주하며 산을 내려간다”고 말했다. 남 씨는 지난해 경기 동두천에서 열린 코리아 50km 트레일러닝에 출전해 완주하는 등 지금까지 크고 작은 대회를 20회나 완주했다. 지난해는 대만에서 3일간 열린 134km 슈퍼레이스에 출전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남 씨는 말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산을 달리면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된다. 일도 더 잘된다. 그리고 대회 참가를 신청하고 스케줄을 짜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이 재밌다. 몸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부상 위험도 있고 힘이 든다. 탄탄한 준비로 완주하면 기쁨이 두 배다.”
최근 산과 사막 등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빠진 남녀 젊은이가 늘고 있다. 트레일러닝으로 삶의 활력소를 찾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남지현 씨(왼쪽 사진 왼쪽)와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트레일러닝의 선구자로 활약한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오른쪽 사진). 남지현 씨·유지성 대표 제공
유 대표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50여 개의 트레일러닝 대회가 있다. 많게는 1500여 명, 적게는 수십 명이 달린다. 트레일러닝은 산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등산객들과의 마찰 등을 고려해 참가 인원을 제한한다. (사)달리는의사들이 18일 주최하는 소아암돕기 행복트레일런축제도 선착순 500명으로 제한했다. 서울 대모산과 청계산, 인릉산 등을 달리기 때문에 등산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트레일러닝 국내 인구는 1만 명 정도다.
수도권에는 달리기 좋은 산이 많다. 도봉산 창포원에서 출발해 태릉에 이르는 코스와 일자산, 대모산, 관악산 등.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은 트레일러닝 고수들이 좋아하는 ‘강북 5산 종주’ 코스다. 다소 난도가 높아 초보자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트레일러닝 참가는 국내외가 따로 없다. 이미 아시아 지역 트레일러닝에 참가한 남 씨는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에 도전할 계획이다. UTMB는 트레일러닝 대회 가운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 170km(UTMB), 101km(CCC), 119km(TDS), 290km(PTL), 55km(OCC) 등 5개 종목이 열린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일러닝 대회가 많다. 해외로 갈 경우 경비가 보통 600만∼700만 원(항공, 숙박, 특수장비 구입 포함) 든다. 남극은 2000만 원이 넘는다. 그래도 트레일러닝에 빠진 사람들은 해외의 산과 사막으로 향한다.
‘극지(極地)’인 사막을 달리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2차례 한 유 대표는 사막마라톤을 트레일러닝의 ‘끝판왕’이라고 부른다. 모래와 산, 물, 눈 등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며 달릴 수 있다. 사막마라톤은 6박 7일간 250km를 질주하는 스테이지 레이스다. 식량과 침낭 등 7일간 필요한 것을 가방에 넣어 짊어지고 달린다.
사하라(나미비아·과거 이집트)와 고비(몽골·과거 중국), 아타카마(칠레), 남극마라톤 등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최홍석 씨는 “여러 스포츠를 즐기다 도로 마라톤에 지쳐 있을 때 사막마라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지난해 사하라와 고비사막을 다녀왔다. 그런데 과거 기간에 상관없이 4개 마라톤을 완주하면 됐던 그랜드슬램이 1년에 다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어 올 4월 사하라, 8월 고비를 다시 다녀온 뒤 9월 아타카마까지 완주했다. 특히 최 씨는 아타카마에서 허곽청신 씨, 유동현 씨와 팀을 이뤄 사상 처음 팀레이스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사하라와 고비에서 만나며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팀레이스가 있어 함께 나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둘 다 흔쾌히 수락해 달렸는데 1등을 했다. 팀레이스는 함께 레이스를 펼쳐 동시에 들어와야 한다. 좀 빠르다고 먼저 가면 팀레이스가 안 된다.” 최 씨는 아타카마사막이 가장 좋았다. 그는 “사하라, 고비와는 다른 풍경이 있었다. 달의 계곡이라는 곳이 있는데 흡사 우주에 온 듯했다. 달이나 화성의 지형과 닮았다. 눈처럼 하얗게 덮인 소금 결정체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유동현 씨는 “군대 있을 때 우연히 잡지를 보고 사막마라톤을 접했다. 그 순간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대에서 허락을 받고 시작했다. 하루 4, 5시간 운동했다. 체육시간 외에 자유시간에도 운동을 했다. 그래서 4월 사하라를 완주했고 7월 전역한 뒤 고비와 아타카마를 다녀왔다”고 말했다. 한양대 전기공학과 복학 예정인 그는 “처음 보는 경치도 아름다웠지만 전 세계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그랜드슬램을 하면 세계 최연소가 된다. 지금까지는 만 22세였다”며 말했다. 그는 사막을 달리며 세계의 여러 사람을 만나 성장했다고 했다. 그래서 사막을 달리듯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일찌감치 ‘인생 목표’도 설계했다고 한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