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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소리없이 떠난 KCC 추승균 감독

입력 | 2018-11-17 12:20:00

-시즌 초반 성적 부진 책임지고 퇴진
-20년 넘게 현대와 KCC에서 한 우물 마감
-현역 시절 최다 5회 우승, 꾸준함 대명사




성적 부진 책임지고 사퇴한 KCC 추승균 감독.

프로농구 KCC 추승균 감독(44)은 선수 시절 ‘소리 없이 강한 사나이’로 이름을 날렸다.

한양대 졸업 후 1997년 현대(현 KCC)에 입단해 이상민, 조성원과 ‘이조추 트리오’를 이뤄 전성기를 맞았다. 화려한 개인기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안정된 득점력과 탄탄한 수비로 공헌도가 높다는 평가를 들었다. 감독들에게 함께 뛰고 싶은 1순위 선수로 이름을 자주 올렸다. 현역 시절 다섯 손가락에 모두 우승 반지를 끼며 주위의 부러움도 샀다. 오랜 세월 챔피언결정전 최다 우승 기록(5회) 보유자였다. 몇 년 전 대학 후배인 양동근(현대모비스)가 5번째 정상에 오르며 선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선수 시절 다섯손가락에 모두 우승 반지를 채운 추승균.

하지만 지도자 추승균은 한가지 오점을 남기게 됐다. 2015년 허재 감독의 중도 하차로 KCC 지휘봉을 잡은 그는 이번 시즌 초반 전격적으로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KCC 구단의 짧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추 감독이 자진 사퇴하겠다고 밝혀와 수용했다”고 밝혔다. 농구계에서는 이런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지 않는 분위기다. 사실상 성적 부진에 따른 경질이라는 것이다. 추승균 감독의 한 측근은 “사표를 내라고 해 그렇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추 감독의 계약 기간은 2020년까지 2년으로 알려졌다. KCC 구단 관계자는 “실제로는 1+1 계약이었다. 2018~2019시즌 종료시점까지만 임기가 보장된 것이다. 추 감독은 연봉 2억8000만 원 가운데 내년 상반기까지 남은 금액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2016년 KCC 감독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헹가래를 받고 있는 추승균.

선배 지도자들은 추 감독의 하차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 프로팀 감독은 “뭘 해보지도 못하고 그만두게 됐다”며 “선수 때는 조용한 이미지가 괜찮을 수 있지만 감독은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며 자기 목소리를 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방송 해설위원도 “팀이 어려울수록 선수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벤치에서도 강하게 독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농구인은 “KCC의 결정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 관두게 할 것이라면지난 시즌 종료 시점에 재계약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아직 2라운드도 끝나지 않은데다 하승진도 부상이지 않는가”라고 아쉬워했다.

추 감독은 2016년 KCC를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오리온에 패해 통합 우승에 실패했다.

KCC 선수 시절 허재 감독과 함께 태백 전지훈련에 나선 추승균 감독과 조성원 이상민.


지난 시즌에는 9억2000만원을 들여 이정현을 영입해 우승을 노렸지만 SK와의 2위 경쟁에서 밀려나 3위가 돼 4강 직행에 실패했다. 6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4강에선 다시 SK에 패해 시즌을 끝냈다.

이번 시즌에도 현대모비스, SK와 3강 후보로 꼽힌 KCC는 하승진 부상 여파에 휘말리며 5할 승률을 밑돌며 하위권에 처졌다. 특히 뒷심부족으로 4쿼터에 턴오버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약점을 보여 역전패가 많았다.

시즌 전 인터뷰에서 추 감독은 목표를 “우승”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승진의 컨디션이 좋다며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현실은 달랐다.

KCC는 전신인 현대 시절부터 좀처럼 감독을 바꾸지 않는 구단으로 유명하다. 추 감독을 포함해 프로 출범 후 20년 넘는 역사 속에 사령탑은 신선우, 허재 3명뿐이다. 프런트 입김이 강하기로 소문난 KCC에서 신선우, 허재 감독은 구단주 가문과 고교 동문이기도 했다.

한 프로팀 감독은 “농구 사랑이 각별한 구단 최고위층 오너의 결정 아니겠는가. 그만큼 팀 분위기에 혁신이 필요했다는 방증이다”고 전했다.

선수 시절 일본에서 추승균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당시 장수 비결에 대해 그는 “꾸준히 운동하고 좋은 것만 먹어가며 몸 관리한 것뿐 아니라 마인드 컨트롤을 잘한 것 같다. 낙천적인 성격이 아닌데 코트에선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감을 가지려고 했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주무시다 돌연사하는 아픔을 겪은 추 감독은 “그 일을 계기로 늘 잘돼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힘들 때면 예전 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고도 했다.

어려운 성장기를 거쳐 프로 무대에서 줄곧 한 팀에서만 뛴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추승균 감독. 한때 자신에게 굳어진 모범생 이미지에 스트레스를 받아 일탈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 했다. KCC 지휘봉을 잡은 뒤에는 명문 구단 벤치를 지키는 데 따른 성적 부담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팬들의 악성 댓글과 과도한 비난 여론에 힘들어 했다.

사퇴 후 추 감독은 “일단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농구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쌓겠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20년 넘게 한 직장만 다니다 야인이 된 그가 코트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