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 캠페인으로 음주운전 근절한 독일·네덜란드…우리도 적극 검토해야
“단순히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지시’ 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이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 습관이 들도록 재미있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게 보다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에서 만난 로브 스톰프홀스트 마케팅·교육 담당자가 강조한 말이다. VVN은 음주운전을 줄이기 위해 ‘밥은 술에 취하지 않는다(BOB STAYS SOBER)’ 캠페인을 2001년부터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밥(BOB)은 한국의 ‘철수’ ‘영희’처럼 네덜란드에서 흔한 이름이다. 전국에 있는 밥들의 동참에 힘입어 네덜란드의 음주운전은 감소하고 있다.
● 놀이가 된 근절 캠페인 ‘밥의 기적’
네덜란드의 한 야외 축제장에서 축제 참가자 중 ‘밥(BOB) 캠페인’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음주 측정이 진행되고 있다.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 제공
네덜란드 사람들은 술자리가 시작되기 전 일행 가운데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밥’을 정한다. 밥은 밥이라 적힌 열쇠고리를 건네받고 술자리가 끝난 뒤 운전을 책임진다. 술자리를 가지는 사람들이 재미나게 동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음주운전을 줄여보자는 취지였다. 밥 캠페인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교통안전 캠페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네덜란드 운전자의 75%가 차량을 이용해 술이 있는 식사 자리에 가면 캠페인에 참여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밥으로 지정된 사람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로브 스톰프홀스트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 마케팅·교육 담당자가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의 VVN 본부에서 네덜란드의 ‘밥(BOB) 캠페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아메르스포르트=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특히 주류 회사가 함께 캠페인에 참여하며 큰 화제가 됐다. VVN이 주류 회사의 참여를 제안했을 초기에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VVN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설득했고, 주류 회사들이 올해 2020년까지 3년간 밥 캠페인을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술을 즐기며 진행되는 각종 유명 공연 및 축제에서도 밥 캠페인은 큰 효과를 거뒀다. 공연과 축제 참가자들 가운데 밥이 되기로 한 사람에게는 밥이라고 적힌 도장을 손목에 찍게 한다. 밥이 된 사람은 행사가 끝난 뒤 직접 ‘밥 캠페인 부스’에 가서 음주 측정을 한다. 이들이 음주를 하지 않았다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17개의 대형 축제에서 약 150만 명이 캠페인에 참가했다. 이 중 약 12만 명이 음주 측정에 임했고 약 8만 명이 약속을 지켰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된 국내에서 음주운전을 줄이는 데 밥 캠페인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 강력한 처벌과 계도로 음주운전 잡은 독일
독일은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 강국답게 정부와 산업계, 시민사회가 음주운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8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독일도로안전협회(DVW)의 쿠루트 보데위그 회장은 “1970년대 서독에서만 교통사고로 한 해 약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통일 독일에서 3180명이 줄었다”며 “안전띠 의무화와 함께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큰 비결이었다”고 소개했다.
지난달 8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독일도로안전협회(DVW) 본부에서 쿠루트 보데위그 DVW 회장이 독일의 강력한 음주운전 근절 대책을 소개하고 있다. 베를린=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DVW는 1924년 설립된 유럽 최대의 교통안전 비영리 기구(NPO)로 독일 전국에서 6만 명이 자원봉사로 참여하며 교통안전 정책을 개발·제언하고 캠페인을 벌인다. 자동차 제조사가 금전적 지원을 하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한다.
독일의 음주운전 적발 기준은 한국과 같은 혈중알코올농도 0.05%다. 하지만 운전자가 음주운전의 위험을 일찍이 깨우치도록 하는 데 음주운전 근절 정책의 중점을 뒀다. 대표적인 것이 면허를 갓 취득한 후 2년간의 ‘임시면허’ 소지자에 대한 조치다. 이들의 음주운전 적발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3%다. 임시면허 운전자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정부는 면허를 3~6개월 간 회수한다. 만 18~21세 임시면허 운전자의 경우에는 임시면허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난다. 이 나이에는 임시면허가 아니라도 혈중알코올농도 0.03%를 음주운전 적발 기준으로 한다. 술 한 잔만 마셔도 절대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지난해 독일의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31명이었다. 2014년 260명과 비교해 11.1% 줄었다. DVW는 이를 모든 연령대로 확대할 것을 정부와 검토하고 있다.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 독일에서 시행 중인 ‘보프(BOB)’ 캠페인. 시민이 동행자에게 술을 마실 건지, 운전을 할 건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정할 것을 묻고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음식점, 바, 클럽처럼 술을 파는 업소에서 일행 중 1명을 술을 마시지 않는 ‘보프’로 지정해 음주운전을 줄이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독일도로안전협회(DVW) 제공
음주 문화가 일찍이 발달한 ‘맥주의 나라’답게 음주운전을 근절하는 다양한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처럼 독일에서도 밥 캠페인은 흔한 풍경이다. 주류를 판매하는 식당에서는 고객이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면 무료로 음료수를 자발적으로 제공한다. 보데위그 회장은 “술과 운전을 처음 접하는 어린 운전자가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일찍이 알고 단념하도록 하는데 효과가 크다. 업소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음주운전 예방에 참여하는 좋은 가게라는 인상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수정 한국교통안전공단 선임연구원은 “우리도 독일 등 유럽처럼 강력한 처벌로 음주운전 시도를 초기에 막고, 음주했을 경우 차량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시동잠금장치’ 보급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단 한 잔도 안 된다’…교통안전 선진국의 음주근절 방법은?
교통안전 선진국들은 초보 운전자를 특별 관리하는 ‘임시면허’를 운영한다. 이 기간 동안 교통 법규를 위반하면 일반 운전자보다 엄격하게 처벌하는데, 임시면허는 특히 상습 음주운전자가 되지 않도록 운전 초기에 강력한 제재 수단으로 쓰인다.
프랑스는 법적 음주운전 처벌 기준이 혈중알코올농도 0.05%지만 임시면허 소지자는 0.02%부터 면허가 취소된다. 0.02%는 맥주 1잔으로도 나올 수 있는 수치다. ‘단 한 잔도 안 된다’는 의식을 확실히 심어주기 위해서 기준을 강화했다. 임시면허 기간 동안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인 상태로 운전하다가 적발되면 3년간 면허 발급이 정지된다. 또 임시면허 기간인 3년 동안에는 의무적으로 초보운전 스티커를 차 뒤편에 붙여야 한다.
독일은 음주운전과 뺑소니, 과속 등 중대 위반행위와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불법 주정차 등 보통 위반행위로 교통법규 위반 사항을 분류한다. 중대 위반행위 1번, 보통 위반행위 2번으로 적발되면 임시면허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된다. 임시면허 기간이 연장된 사람은 8주 동안 교통안전 보충교육을 9시간 받아야 한다. 보충교육을 받지 않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음주운전은 더욱 엄격하게 처분한다. 임시면허 기간동안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되면 6~12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특별보충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
호주는 운전면허 취득 자체를 어렵게 했다. 임시면허, 예비면허를 거쳐야 정식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고, 각 단계에 의무 보유기간이 있어서 운전면허 취득까지 최소 4년가량 걸린다. 호주에서도 초보운전자의 음주운전은 가장 엄격하게 제재한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여야 운전할 수 있는 ‘제로(0)용인법’을 사용하고 있다.
명묘희 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음주운전 위반자들을 보면 첫 적발 때부터 2회, 3회 거듭될 다음 적발에 걸리는 기간이 짧아지는데 이는 음주운전이 습관이 된다는 의미”라며 “초보운전자일수록 안전운전 습관을 위해 첫 적발 때부터 강하게 처벌해야한다”고 말했다.
아메르스포르트=구특교기자 kootg@donga.com
베를린=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베를린=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