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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수능 끝! 271쪽 점자 문제 다 풀었다

입력 | 2018-11-19 03:00:00

13시간 3분… 전국서 가장 늦게까지 수능 치른 김하선 양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틀 뒤인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맹학교 교실에서 만난 김하선 양은 “월요일부터 다시 기말고사”라며 ‘확률과 통계’ 점자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비장애인 학생들이 보는 확률과 통계 교과서 한 권을 점자책으로 만들면 5cm 두께 책 6권이 나온다. 청각마저 좋지 않은 김 양은 음성 학습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김 양의 점자 읽는 속도는 1초면 한 줄을 읽을 정도로 빨랐다. 인터뷰는 기자가 그의 왼편에 앉아 큰 소리로 질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대답은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또렷하고 자연스러웠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밤 10시 수능 끝! 271쪽 점자 문제 다 풀었다>

15일 오후 9시 20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맹학교 앞 거리는 고요했다. 인기척도 없이, 이따금 지나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풍경의 변화를 가져올 뿐이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주택가 골목길 끝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는 학교. 환하게 켜진 교실 안에서 수험생 1명이 홀로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를 풀고 있었다. 김하선 양(18)의 손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히 움직였다. 단 하나의 문제라도 더 정확히 풀기 위해 절박한 손끝으로 점자로 된 시험지를 훑고 내려갔다.

오후 9시 43분.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일반 수험생들은 이날 오전 8시 40분에 시험을 시작해 오후 5시 40분에 끝냈다. 하지만 시청각 장애를 가진 김 양은 오전 8시 40분부터 저녁식사도 거른 채 13시간 3분 동안 시험을 치렀다. 중증 시각장애인에게는 일반 수험생보다 1.7배의 시험시간이 주어진다. 제2외국어까지 모두 응시할 경우 끝나는 시간이 9시 43분이다. 김 양은 부산에서 수능을 치른 시각장애인 1명과 함께 전국에서 제2외국어까지 응시한 ‘전맹’(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장애인 2명 중 1명이었다.

김 양은 총 271쪽에 달하는 점자 수능 문제지를 풀었다. 일반 수험생의 국어영역 문제지는 16쪽이지만 이를 점자로 바꾸면 국어영역만 100쪽에 달한다. 다른 시각장애 수험생들은 화면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았지만 귀까지 좋지 않은 김 양은 모든 문제를 손으로 더듬어 풀었다. 손으로 쓰면서 계산할 수 없다 보니 두 자릿수 곱하기 두 자릿수 정도는 무조건 암산으로 풀어낸다. 지문을 읽는 그의 손끝은 스치는 수준으로 빠르다.

“국어 지문이 정말 정말 길더라고요. 끝까지 다 풀어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풀긴 다 풀었어요.” 최고난도인 국어 31번 문제는 어떻게 했냐고 묻자 “그건, 찍었다”며 배시시 웃었다.

오후 10시. 10도의 쌀쌀한 밤공기 속에 청록색 오리털파카를 입은 중년 남자가 초조하게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잠시 후 김 양이 모습을 보이자 “나온다! 우리 딸!”이라고 소리쳤다. 아무도 서 있지 않은 곳을 바라보며 쑥스러운 듯 웃으며 걸어오는 딸을 아빠가 달려가 안았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김 양은 오들오들 떨었다. 아빠와 엄마는 쉴 새 없이 딸의 어깨를 비비며 “고생했어. 정말 고생했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밤이 되도록 너무 긴 시간이었지? 어이구, 밥도 못 먹고….”

○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수능일인 15일, 오후 10시가 다 돼서야 시험을 마치고 아빠 팔에 기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이 부부가 딸의 이상을 느낀 건 하선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소리에 반응을 하지 않아 이상했다. 큰 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의사는 “눈이 이상한 것 같다”며 안과에 먼저 다녀오라고 했다. 그곳에서 부부는 무너졌다. 망막모세포종양. 이름조차 생소했다. 망막의 암 덩어리가 점점 커지면서 시신경을 따라 뇌로 전이될 수 있는 무서운 병이라고 했다. 결국 네 살 때 하선이는 안구를 적출했다.

청력검사도 절망적이었다. 하선이는 120dB(데시벨) 이상의 소리에만 반응했다. 120dB은 비행기 엔진 굉음을 바로 옆에서 들을 때의 소리 크기다. 사람들은 흔히 ‘시각+청각’ 장애를 ‘1+1’ 장애로 생각한다. 하지만 두 개가 합쳐지면 전혀 새로운 몇 곱절의 장애가 된다. 의사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말을 배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의사의 말을 믿지 않은 건 두 사람뿐이었다. “하나님이 하선이의 눈을 가져갔지만 대신 말은 할 수 있게 해주시리라 믿었어요.” 대기업에 다니는 아빠와 고교 수학교사인 엄마는 2년간 휴직하고 딸의 항암치료와 재활에 매달렸다. 딸의 귀에 대고 매일 수천 번 소리를 외쳤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나무를 만지게 하고 “나! 무!”, 자신의 얼굴에 하선이의 손을 가져다 댄 뒤 “엄! 마!” “아! 빠!”…. 헬렌 켈러에게 설리번 선생님이 있었다면 하선이에게는 엄마 아빠가 있었다.

○ 아이는 말을 했다

탑처럼 높이 쌓인 점자책을 품에 안고 “정말 많죠?”라며 웃는 김하선 양.

그렇게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딸이 입을 뗐다. “어…ㅁ, 마….” 분명치 않은 어눌한 말이었지만 두 사람에겐 천둥소리보다 더 분명하게 들렸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지만 부부는 ‘믿음의 결과’라고 여겼다. 부부는 매일매일 딸에게 책을 읽어줬다. 가능한 한 큰 소리로 매일매일 읽어줬다. 그렇게 딸은 말을 배웠다.

하선이가 다섯 살이 됐을 때 서울맹학교 유치원에 입학했다. 김 양의 아버지는 “학교가 우리 부부에게 희망과 위안을 줬다”고 말했다. 하선이도 학교에 잘 적응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제일 싫은 게 방학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저는 마음대로 뛰어놀 수가 없잖아요. 대신 점자를 배운 뒤 늘 책을 읽었어요. 책을 읽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롭거든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고, 꿈꿀 수 있잖아요.”

책벌레 하선이는 서울맹학교 김은주 교장이 인정하는 이 학교 최고 우등생이다. 이번 대입에서도 하선이는 서울 시내 주요 대학 6곳에 원서를 냈다. 수능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자 하선이는 ‘EBS 문제집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점에 가서 EBS 교재를 마음껏 보고 고를 수 있는 비장애인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수능이랑 EBS 교재가 70%나 연계되잖아요. 우리는 점자로 된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EBS 교재가 처음 나온 뒤 6개월 정도 지난 8월에야 점자책이 나와요. 애가 탔죠. 안 보는 것보다 낫겠지 하면서 몇 년 전 점자책으로 공부하기도 했어요.”

결국 기다리다 못한 부모들이 직접 온갖 교재를 입력해 점자화하는 게 한국 시각장애 학생 교육의 현실이다. “텍스트 파일(한글 파일)만 있으면 점자책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요. 외국에서는 점자책에 한해 저작권 문제없이 책을 만들 수 있도록 출판사가 텍스트 파일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한 곳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유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권고’에 머물러 점자책을 만들려면 부모가 일일이 책을 보고 입력해야 하는 실정이에요.” 딸을 위해 대학원에서 장애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 양 아버지의 설명이다.

○ 이제는 꿈을 꾼다, 교육 제도를 바꾸겠다는 꿈을…

부부는 결혼 전 ‘결혼하면 아이 셋을 낳아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둘째 딸 하선이의 장애를 보며 셋째 낳기가 겁이 났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설령 또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더라도 하선이처럼 키우면 된다고. 감사한 마음으로 키우겠다고.” 하선이에겐 스물두 살 언니 외에 열한 살 남동생과 여덟 살 여동생이 있다. 다른 식구들은 장애가 없다. 하선이는 고1 때 인공 와우(달팽이관) 수술을 받아 그나마 왼쪽 귀로 큰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김 양 아버지에게 “4남매라 돈이 많이 드시겠다”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욕심을 버리면 키울 수 있어요. 보통 학원비가 많이 들잖아요? 저흰 좋은 대학 가는 건 바라지 않아요. 대신 맛있는 걸 많이 사먹죠. 그래서 엥겔계수가 굉장히 높아요(웃음). 이게 행복이죠.”

하선이는 이번 대입에서 6개 대학 모두 교육학과에 원서를 냈다. “어떻게 하면 더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갈증이 항상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는지도 궁금했고요.” 그는 어릴 적부터 엄마처럼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행정고시에 도전할 생각이다. “저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좋은 교육 제도를 만들고 싶어요.”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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