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 ‘자화상 칠’이라는 전국 순회 공연을 시작하는 소리꾼 장사익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홍지동 자택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소리꾼 장사익 씨(69)가 4년 만에 신작 앨범을 내고 24,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자화상 七(칠)’이라는 콘서트를 연다. 서울 종로구 세검정로의 자택에서 만난 장 씨는 “저도 칠학년(칠순)이 되다보니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특유의 잔주름 가득 퍼지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음은 조금 쓰지만 달아도 보였다.
그는 내년 2월 말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음악당(돔 무지키)에서 러시아한국문화원 주최로 첫 단독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장 씨가 서는 돔 무지키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 공연장. 이곳에서 가장 큰 홀인 스베틀라노프 홀이 장 씨가 노래할 곳이다. 한러 교류 음악회가 열린 적은 있지만 이 무대를 러시아가 우리 가수 한 명에게 오롯이 내주기는 처음이다. 주로 클래식 공연이 열리는 1700석 규모의 메인 홀로, 러시아 최대 오르간이 설치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 씨는 “몇몇 곡은 러시아어로 번안해 부르고 한국어 가사를 자막으로 보여줄 것”이라며 “사물놀이, 재즈와 협연하는 폭발적인 무대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년 6월에는 캐나다로 넘어가 ‘토론토 재즈 페스티벌’에도 출연한다. ‘찔레꽃’을 비롯한 히트 곡들을 현지 관현악단과 재즈 스타일로 새로 편곡해 협연한다. 현지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음반으로도 제작할 계획이다.
장 씨가 이어갈 대장정의 출발점은 22일 내는 4년 만의 정규앨범 ‘9집 자화상’. 첫 곡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직접 곡조를 붙인 ‘자화상’. 7분 11초짜리 대곡이다.
“윤 선생 시 앞에 1년 반을 바짝 엎드렸지유. 날이면 날마다 선율을 이렇게 저렇게, 천 번 이천 번 다르게 붙여 불러보고야 완성을 했으니까유. 조정래 선생이 글쓰기를 감옥에 비유했던데, 저도 음의 감옥에 갇힌 셈이쥬. 행복한 감옥 말이유.”
노래에 가을빛이 완연하다. 허영자의 시 ‘감’에는 장송곡 같은 합창과 고즈넉한 트럼펫 이 붙고, 김영랑의 시 ‘오-매 단풍들것네’에서는 ‘워매~ 워매~ 단풍 들겄네~’ 하는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그대로 멜로디가 된다.
장 씨는 자택 2층 작업실에서 황차(黃茶)를 정성스레 우려냈다. 창밖으로 북한산과 인왕산 자락이 보였다. 노랗게 붉게 가을이 저물고 있었다. “저는 이 시간, 오전 10시가 제일 좋아유.” 베네수엘라 가수 솔레다드 브라보의 애달픈 노래를 집이 떠나가도록 큰 음량으로 틀었다. 브라보의 애달픈 음색을 들으며 장 씨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2년 전 성대 이상으로 수술을 받은 그는 “95% 정도 회복했다”고 했다.
“프레디 머큐리가 가진 소리를 저는 못 가졌어유. 그 쇠기둥처럼, 스포트라이트처럼 뻗어나가는 소리 말이유. 괜찮아유. 저에게는 저의 소리가 있잖유. 허허허.”
임희윤 기자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