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부터 추진됐지만 반대 여론에 번번이 막히던 주민번호제도는 1968년 중대한 안보 상황 덕을 봤다.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이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해 대통령을 노린 1·21사태에 이어 이틀 뒤 동해 공해상에서 미국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피랍됐다. 주민번호 발급 3주 전 터진 울진·삼척무장공비침투사건은 종지부였다. 열 손가락 지문을 찍게 된 건 유신체제가 굳어진 1975년. 앞 6자리에 생년월일을 넣고 뒤 7자리에 성별, 지역, 출생신고지 고유번호 등을 넣는 13자리 주민번호도 이때 생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5개국 이상은 개인 식별을 위해 개인고유번호, 신분증번호, 국가신분증 등을 쓴다. 북한에는 공민증이 있지만 거주지를 제한하고 이동을 통제하는 수단일 뿐이다. 6자리 공민번호를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한다. 개인의 특정 고유 정보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고, 각양각색의 개인정보가 주민번호를 토대로 형성되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민동용 논설위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