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을 이틀 연속 불러 조사하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전부터 박 전 대법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소환은 전날과는 달리 비공개로 이뤄졌다.
앞서 박 전 대법관은 전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된 이후 전직 대법관을 상대로 한 첫 공개소환이었다.
박 전 대법관은 조사 과정에서 ‘기억이 없다’며 전체적으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장급 법관이나 실무부서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했고, 그에 대한 책임은 실장급 법관에 있다는 취지로 주장도 펼쳤다.
아울러 재판 개입 부분과 관련해서는 당시 행정처의 의견을 전달했을 뿐 이를 바꾸도록 강압한 것은 아니었다는 취지의 변론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법관은 전날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8시20분께까지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진술 조서를 검토하고 전날 오후 11시46분께 귀가했다.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나’, ‘정당한 지시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등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각종 사법 농단 의혹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강도 높게 진행했지만, 조사해야 할 혐의가 방대한 점을 고려해 조사를 수차례 더 진행할 계획이다. 박 전 대법관이 혐의를 사실상 전부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강도 높은 조사는 불가피하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처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일제 강제징용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법관은 전임 법원행정처장인 차한성 전 대법관에 이어 지난 2014년 김기춘 비서실장 공관에서 열린 이른바 ‘소인수 회의’에 참석했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등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강제징용 재판 지연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법관은 이밖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지위 확인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조작 사건 ▲서울남부지법 위헌제청결정 사건 등에 개입한 혐의도 있다.
아울러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 정보 및 동향을 수집하고, 상고법원 등 당시 사법행정에 반대하는 법관과 변호사단체 등에 대한 부당 사찰,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은폐 및 축소,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 등 각종 사법 농단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지난 6일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를 확보, 분석하고 있다. 해당 문건에서는 음주운전을 한 법관, 법정 내 폭언을 한 법관 등과 함께 당시 사법부에 비판 의견을 낸 법관들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문건에서는 당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1심 판결을 두고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한다’는 뜻을 가진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언급하며 비판한 김동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지난 2014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을 맡은 A 부장판사 등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 박상옥 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등이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것을 두고 “법원 내외부의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결과”라며 비판한 송승용 부장판사, 세월호 특별법 관련 글을 기고한 문유석 부장판사 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