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교 3학년이던 2015년 후생원 풍물 팀으로 영국에서 개최한 구세군 150주년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외국에 나가 요리 공부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 이후 구세군과 캐나다 교포의 도움으로 어학연수 뒤 꿈을 이뤘다.
최근 만난 서울후생원장 김호규 사관(51)은 최 씨의 유학은 아직은 ‘특별한 사건’이라고 했다. “일반 가정에서는 대학에 가지 않으려면 용기가 필요하지만, 후생원 출신 학생들은 학업과 함께 자립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용기가 요구됩니다.”
이후 후생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국내 아동복지의 산증인이 됐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뒤 브라스밴드 대원 18명이 납북되는 아픔을 겪었다. 전쟁 중에도 부산과 제주로 옮겨가면서 아이들을 양육했다.
다음달 30일 설립 100주년을 맞는 구세군서울후생원의 김호규 사관(원장).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울후생원은 100주년을 앞두고 ‘구세군서울후생원 100년사’를 발간했고 최근까지 3차례 기념음악회를 개최했다.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상담심리사 등 36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연중 자원봉사자 3500여명과 후원자 500여명이 후생원 운영의 큰 버팀목이다.
김 사관은 “이곳에 있는 아이들이 받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나누고 감사하는 마음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한다”라며 “다현이처럼 꿈을 이룬 아이들의 편지를 자주 받고 싶다”고 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