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티즌 고종수 감독은 사령탑으로 치른 첫 시즌 팀을 K리그2 4위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50점을 주며 내년 시즌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고종수(40·대전시티즌 감독)하면 생각나는 게 ‘고종수 존(zone)’이다. 아크 부근에서 왼발로 감아 차는 프리킥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리듬감 넘치는 드리블과 창의적인 패스도 일품이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대표팀을 맡은 히딩크가 “고종수처럼만 해라”던 칭찬도 떠오른다. 그는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라는 별명이 가장 잘 어울린 선수였다. 국내에 축구천재로 불린 선수는 제법 되지만, 고종수처럼 화끈했던 선수는 드물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당한 부상이나 결여된 동기부여, 긴 방황 등 사연 많은 선수시절을 보냈다. 스스로 길을 개척하지 못한 채 ‘비운의 천재’는 2008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지난해 말 그가 대전 감독에 선임됐을 때 성공보다는 실패할까봐 걱정이 앞섰다. 은퇴 이후 수원 삼성에서 7년간 코치로 후배들을 도왔지만, 그 때까지 검증된 건 없었다.
누구나 처음은 어려운 법이다. 안 해본 일이어서 서툴다. 고 감독도 그랬다.
“선수나 코치 때는 몰랐던 부분, 보지 못했던 부분이 감독이 되니까 보이더라. 코치 때는 선수들에게 좋은 얘기만 들려주면 됐지만, 감독은 다르다. 팀 전체를 보면서 선수 개개인을 살펴야한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선수가 눈에 들어온다. 가정에 문제 있는 선수가 경기장에서 좋은 플레이가 나올 리 없다.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
선수 고종수는 많이 튀었다. 가끔 건방도 떨었다. 그런데 감독 고종수는 의젓했다. 겸손함도 보였다. 연신 “부족하다”고 했지만 1년 사이에 많이 성숙해진 듯 했다. 그는 ‘배움’을 강조했다. 더 많은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 생각 자체가 이번 시즌 최대 수확이라고 할만하다.
정신적인 성숙과 함께 성적도 괜찮은 편이어서 올 해 점수는 후하게 줄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50점”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부족했고, 많이 배운 한 해다. 그 점수면 충분하다”면서 내년에는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싶다고 했다.
대전 시티즌 고종수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그가 이번 시즌 지켜준 게 있다. 바로 선수의 자존심이다.
“선수 잘못을 지적할 때 돌려서 얘기하는 편이다. 선수들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한다. 나도 선수 때 자존심 건드리는 걸 싫어했다. 지금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영상으로 만들어서 SNS를 통해 보내준다. 선수의 잘못을 뻔히 아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걸 다시 확인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보람을 말할 때는 목소리가 커졌다. 막 프로에 발을 디딘 선수와 어린 선수들이 조금씩 커 가는 모습, 또 그들이 내년에는 더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 아울러 구단이 사무쳐 있던 각종 징크스를 하나 둘 깨뜨려나갈 때 느끼는 뿌듯함을 언급하며 “이게 감독하는 맛”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 선생님들의 말씀이나 행동이 이제 이해가 된다. 그 분들이 했던 선수단 관리 중에서 좋은 부분만 골라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그의 SNS 프로필에는 ‘호시우보(虎視牛步)’가 적혀 있다. 호랑이처럼 예리한 시선을 갖되, 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자기 성찰의 의미도 담겼다.
“축구인생에서 보면 아무리 준비해도 안 될 때가 있더라.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선수들에게도 한번에 몇 계단씩 뛰어 오르겠다는 생각보다는 차근차근 올라가라고 말한다. 내게 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감독 고종수의 첫 걸음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축구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됐을 뿐이다. 만족도, 실망도 논할 시기가 아니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더 깊은 공부를 해야 한다. 부디 선수로서 피우지 못한 천재의 꿈을 지도자로 완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