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비상하는 한국 건설<3>삼성물산-쌍용건설
삼성물산이 드론을 띄워 찍은 ‘지하철 T307’ 공사 현장 모습. 싱가포르 동남부 머린퍼레이드 지역에 위치한 ‘T307’ 현장은 바다를 매립한 지역이어서 첨단 기술을 요한다. 삼성물산 제공
○ 매립지 연약지반에 놓이는 도심 지하철
바닷물을 메운 땅에 건물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지하를 파고, 철도를 건설한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공사 구간 일대는 노선버스 25대가 쉼 없이 지나고, 도로변에는 호텔과 대형 복합상가, 아파트 단지 등이 밀집돼 있다. 한국이라면 공사 계획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삼성물산이 현재 싱가포르 동남부에 위치한 머린퍼레이드 지역에 짓고 있는 ‘지하철 T307’ 공사 현장 얘기다.
문제는 현장이 바다를 매립한 곳이어서 지반이 연약하다는 점이다. 흙을 파내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커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홍정석 삼성물산 T307 현장소장이 제시한 해법은 ‘지하철이 지나갈 구간 양측에 60m 길이의 콘크리트와 철골로 만든 벽체를 짓는 것’이었다. 실제로 현장에선 벽체가 들어설 공간 확보용 흙 퍼내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벽체에 들어갈 철골 구조물 등이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 첨단 설계로 난관을 극복하다
쌍용건설 컨소시엄이 시공 중인 ‘우들랜드 헬스 캠퍼스(WHC)’ 조감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국경지대 인근에 위치한 WHC는 전체 건물을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방식이어서 첨단 기술을 요한다. 쌍용건설 제공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물산은 빌딩정보시스템(BIM)을 활용한 공사 설계를 도입했다. 이는 공사 입찰 당시에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삼성물산이 자체 개발한 BIM은 공사 기간별 공사 단계가 표시된다. 특정 지역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해당 지점에 대한 공사 진행 유무와 필요 자재 등 주요 정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표시된다.
또 T307 사업자 선정 입찰에 참여한 6개 회사 중 유일하게 삼성물산만 대안설계를 제시했다. 도로를 옮기고 다시 복구하는 단계가 12단계였지만 이 과정을 7단계로 줄여 응찰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가격 점수는 바닥이었지만 설계 점수는 1등을 받아 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다.
삼성은 주변 민원 해소를 위해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세심한 현장 관리에도 공을 들였다. 홍 소장은 “전담팀을 중심으로 민원인들의 이해를 구해야 할 사안이 생길 때마다 설명회를 열었다”며 “현지인들이 합리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공사를 일정대로 진행해 나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첨단 공법의 시험장, 우들랜드 헬스 캠퍼스
문제는 또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병원 건축물 대부분을 사전 제작한 뒤 공사 현장에서는 레고 블록을 맞추듯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사 현장에는 40억 원을 투입해 100개가 넘는 병원 전체 건축물의 각 부분을 실물 크기로 만든 모형(mock-up)들이 별도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형을 만들기 어려운 부분은 가상현실(VR)로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와 WHC 병원장 내정자 등이 방문해 각 방의 디자인과 자재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엄 소장은 “‘공업화 공법’이라고 불리는 이런 건축 방식은 미리 만들어진 설계도대로 레미콘을 쏟아부어 만드는 일반적인 방식보다 건축비가 30% 이상 비싸진다”며 “국내에선 삼성전자 공장 등 일부 특수 건축물을 빼곤 적용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귀띔했다.
○ 특수 건축 ‘어벤저스’가 뭉치다
게다가 장비가 새로운 제품이 나와 변경될 경우까지 고려하면 건축물의 사전제작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도 공사 관계자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 밖에도 지하 2, 3층에 전쟁 등 위험 상황을 대비한 대규모 벙커(civil shelter)를 설치해야 하는 등 공사 현장에는 시공사를 괴롭힐 요소들이 끊임없이 자리 잡고 있다. 엄 소장은 “도전하는 심정으로 공사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싱가포르 정부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물 ‘마리나베이샌즈(MBS)’ 건설 주역이다. MBS는 50층 높이의 50도가량 기울어진 건축물 3개동 머리 위에 건물 2층 높이 규모의 배를 얹은 독특한 외관으로 세계 건축사에 남을 명작으로 꼽힌다. 엄 소장 이외에도 WHC 현장에는 MBS 건설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대거 참여해 있다. 엄 소장은 “특수건축물 공사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이 뭉친 셈이다. 반드시 계획 기간에 건설을 끝내 싱가포르에 한국 건설사의 시공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해 보이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싱가포르=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