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서 미래를 찾는다]
홍콩 슈퍼마켓에서 팔리고 있는 한국산 딸기. 미국산에 비해 단맛이 강하고 일본산보다 가격이 싸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엘림무역 제공
한국산 딸기가 일본 농림수산성 수장이 시비를 걸 정도로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한국산 딸기는 홍콩,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지로 연간 4000만 달러(약 453억 원) 이상 수출되는 ‘효자 농산물’이다. 올해 들어서도 9월 말까지 3566만 달러어치가 수출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4% 늘어났다. 호주 등 신시장 개척도 활발한 편이어서 지난해 수출액(4298만 달러)을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역설적이게도 한국산 딸기가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은 일본 덕분이다. 2002년 한국이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하자 일본은 한국에서 재배 중인 일본 딸기 품종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했다. 당시 국내 딸기 재배 면적의 80% 이상이 일본 품종이었고, 2003년 한국 측이 부담한 로열티는 무려 36억 원이나 됐다. 수출도 급감했다. 2000년대 초반 연간 1100만 달러 규모였던 딸기 수출액은 2004년 420만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이때부터 한국은 ‘딸기 품종 독립운동’에 나섰다. 충남농업기술원 등이 앞장서 국산 품종 개발에 나섰다. ‘매향’ ‘만향’ ‘설향’ 등 국산 품종이 잇달아 나왔다. 딸기 농가들도 로열티를 내는 대신 국산 품종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2005년 9.2%에 불과했던 국산 품종 보급률은 지난해 93.4%까지 증가했다. 사실상 ‘딸기 품종 독립’이 이뤄진 셈이다.
○ 민관 합동 작전이 성장을 이끌어
품종 족쇄가 사실상 풀리면서 국내 딸기 산업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우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딸기 전문생산단지를 조성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펼쳤다. 민간 수출업체도 해외 시장 개척에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수출 물량을 늘렸다. 한국산 딸기의 소비 확산을 위해 수출국에서 TV 광고를 하며 세계에서 최고 품질로 평가받는 일본산 딸기에 필적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농산물 수출업체인 엘림무역 오성진 대표는 “설향 등 국산 딸기 품종은 일본 품종에 비해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장점이 있다”며 “여기에다 최근 들어 딸기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서 ‘규모의 경제’에 따른 가격 경쟁력도 있어 앞으로 해외 시장에서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