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40분, 종이 울리자 시험지 넘기는 소리와 함께 수험생들은 펜을 분주히 움직입니다. 빈자리 주인공 3명은 종이 울린 뒤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바로 결시자 카드를 작성해 복도 감독관에게 인계합니다. 발걸음도 조심하며 부감독관과는 눈짓과 손짓으로 말합니다.
응시원서철을 들고 사진과 실물을 대조합니다. 닮은 것 같지 않은 학생을 눈여겨봤다가 감독관 도장을 찍을 때 가까이 가서 신분증과 다시 한 번 비교해봅니다. 동일인인지 의심스럽지만 화장을 짙게 한 사진 속 얼굴과 실물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감독관으로서 더 이상 의심을 품고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잔뜩 예민해진 수험생이 감독관 탓을 하며 시험을 망쳤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라면 닮은 형제자매가 대리시험을 보더라도 적발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능 원서 사진에 대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지침에는 ‘최근 6개월 이내 양쪽 귀가 나오도록 정면 상반신을 촬영한 여권용 사진’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부정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존 지침에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덧붙여야 할 듯합니다.
어느 순간 수험생들의 시선이 한곳에 오래 머무릅니다. 만유인력 법칙을 소개한 국어영역 31번 물리 관련 지문입니다. 물리Ⅱ를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난해한 지문입니다. 채권과 채무, 채무불이행의 법률 효과 등이 나온 비문학 지문도 법과 정치 선택자에게 유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험생의 표정이 더욱 굳어집니다. 수험생의 ‘멘털’이 붕괴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는 감독관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갑니다. 수학, 영어, 탐구 영역까지 모두 끝나고 나니 수험생의 체력이 걱정됩니다. 감독관인 저도 허리와 다리가 뻐근합니다.
수능이 끝난 지 일주일가량 지났는데도 여러 뒷얘기들이 멈출 줄 모릅니다. 만점자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수십 년간 변함없습니다. 뉴스거리가 될지언정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쉬우면 물수능이라고 걱정하고, 조금 어려우면 불수능이라고 걱정합니다. 언론에 비친 감상적 수능 스케치와 달리 냉혹한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하는 수험생들, 인생 길게 보고 기운내기 바랍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