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금융이 사실상 마비된 북한에서 ‘이관집’이라고 불리는 개인 은행이 번창해 북한돈은 물론 외화 송금까지 대행해주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사진은 북한의 지폐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돈이 유통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 돈을 전달하는 곳은 은행이 아닌 ‘이관집’이라고 불리는 송금 전문 개인은행이다.
가령 내가 지방에 갔다가 갑자기 평양에 돈을 보낼 일이 생긴다면 은행을 찾지 말고 주변에 ‘이관집’이 어디냐고 수소문해야 한다. 이관집에는 전화를 할 수도 있고, 직접 찾아갈 수도 있다. 전화로 하면 어디에서 보자고 연락이 온다. 직접 찾아가도 집에 절대 들여놓지 않는다. 대문 앞에서 현금을 확인한 뒤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집 안으로 사라진다.
조금 있다가 주인이 나타나 “이송이 끝났으니 그 돈을 어디 가서 찾으라”며 평양의 전화번호를 넘겨준다. 그러면 나는 그 돈을 받아야 할 평양 사람에게 그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해당 전화번호로 연락해 돈을 찾는다. 빠르면 몇 시간 내로 송금 절차가 끝난다.
물론 북한 주민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고, 또 이용할 수 있는 조선중앙은행에도 송금 서비스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 찾으러 가면 “아직 돈이 없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하는데, ‘써비’라고 불리는 뇌물을 주지 않으면 제풀에 지치기 십상이다. 뇌물을 주며 은행을 이용할 바에는 이관집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이관집은 한국의 은행처럼 전산망을 통해 돈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고정 거래하는 평양의 상대 이관집에게 “얼마를 받았으니 얼마를 전해 달라”고 전화로 말하면 끝이다. 평양 이관집은 또 지방에 돈을 보내야 할 때 같은 방식을 쓴다. 이렇게 돈이 오가다 한쪽으로 너무 몰리면 자기들끼리 네트워크를 사용해 돈을 적절히 분배한다.
이관집은 장마당 경제의 발달과 함께 2000년대 초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열차를 타고 출장을 다니는 사람이나 열차원, 자동차 운전사 등이 돈을 날라 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운반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지역 간 송금을 담당하는 이관집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이관집은 신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로 가족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평양에 사는 언니와 원산에 사는 동생이, 또는 개성에 사는 딸과 신의주에 있는 친정 부모가 서로 연계를 가지는 방식이다. 지방의 이관집 중에는 특정 지역 구간에 전문으로 특화돼 한꺼번에 거액을 보낼 수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이렇게 큰돈을 다루려면 권력과 공생이 필수다. 권력이 뒤를 봐주지 않는다면 ‘비사회주의 현상’과의 투쟁을 내건 각종 검열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북한의 이관집들을 보면 노동당, 사법기관 간부의 가족이 대다수이다. 간혹 무역 기관 일꾼이 이관집을 하기도 한다.
이관집이 없어진다면 북한 장마당은 당장 마비된다. 이관집은 시장경제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북한 당국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 외화까지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며, 신용과 비밀을 보장해 주는 이관집과의 경쟁에서 국영은행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몸집을 키운 이관집들은 대부업까지 진출하고 있다. 북한에서 월 이자는 5∼10%에 이른다. 돈을 빌려주면서 사람이나 부동산 담보를 받는 개념도 이관집이 처음 도입했다. 북한의 개인금융이 앞으로 얼마나 더 비대해질지, 국영은행이 개인금융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