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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그늘진 목소리, ‘언니네 이발관’을 덮고 방탄소년단에까지…

입력 | 2018-11-21 03:00:00

아이돌부터 인디 고참까지… 이이언의 범상치 않은 ‘광폭 협업’




공동 작업에서도 자기 색을 잃지 않는 음악가 이이언. 지난해 신중현 헌정앨범 프로듀서를 맡은 그는 “또 다른 가수의 앨범 프로듀서 제안이 들어왔다. 프로듀서 역시 적성에 꽤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이언 제공

“방탄소년단의 노래 중에도 마이너(단조) 느낌이 많죠. 살짝 기본 정서가 저랑 맞는 느낌도 있습니다. 하하.”

최근 만난 음악가 이이언(본명 이용현·43)의 목소리는 그의 음악과 비슷했다. 장조와 단조 사이를 오가며 기묘하게 불안한 기운을 전하던 어둡고 또렷한 노래. 그 음성.

이이언의 ‘광폭 협업’ 행보가 요즘 이채롭다. 아이돌 가수부터 인디 고참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지난달엔 방탄소년단 리더 RM의 노래에 목소리를 보탰다. RM의 믹스테이프(비정규 앨범) ‘mono’에 실린 우울한 곡 ‘badbye’에서 가창을 맡았다. 올해 시작한 듀오 ‘나이트오프’에서는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기타리스트 이능룡과 파트너를 이뤘다. 최근 낸 싱글 ‘예쁘게 시들어 가고 싶어 너와’에 실린 이이언의 목소리는 역시 단박에 그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제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그늘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썸’의 음악감독을 맡았을 때 말미에 실릴 밝은 곡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죠. 반주만 먼저 만들어 보냈을 때는 ‘그래, 이거다. 밝고 좋다’던 감독이 제 가창이 얹어진 버전을 듣더니 ‘너무 어두워졌다’며 그 곡을 끝내 반려했죠.”

듀오 ‘나이트오프’의 이이언과 이능룡(오른쪽). 이이언 제공

이이언은 독특한 색채의 음악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는 밴드 ‘못’의 리더로서 2004년 데뷔했다. 록의 거친 질감과 전자음악의 차가운 속성을 절묘하게 결합하는 게 장기. 대학에서는 전파공학을 전공했단다. “전파공학과 음악은 꽤 통하는 분야예요. 실제로 신시사이저 소리나 전자음을 만들 때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크게 도움이 됐죠.”

RM과 인연은 몇 년 전 RM이 먼저 이이언에게 연락하며 맺어졌다. “마침 방탄소년단의 ‘RUN’을 듣고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참이었죠.” 둘은 맥주도 한잔하고 음악 이야기도 나눴다. 꼭 합작을 해보자고 약속을 했던 게 이번에야 결실을 맺었다. “‘badbye’는 RM이 작사, 작곡, 편곡을 전부 한 곡이에요. 전 그냥 목소리만 보탰죠. 밴드 ‘못’과 감성이 너무도 비슷해 깜짝 놀랐어요.”

마른 얼굴에 뿔테 안경을 낀 인상, 노이즈까지 디테일로 활용하는 작품처럼 이이언은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지녔다. 그 탓인지 최근엔 공황증세가 와 음악 작업을 쉬고 있다. 그러나 곧 ‘나이트오프’의 첫 앨범이 나온다. 6월부터 디지털 음원으로 공개한 네 곡에 새로 작업한 두 곡을 보탠 미니앨범이다. 30일 발매. 음반 제목은 ‘마지막 밤’. 우울한 종말의 이야기일까.

“글쎄요, 듣는 분들에게 맡길게요. 모호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좋아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