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금융이 강한 경제 만든다]2부 눈앞만 보는 ‘우물안 금융’ <2> 투자영토 경쟁에서 뒤처진 한국
그래픽 김성훈·권기령 기자
한국 투자자들은 안 씨처럼 좁은 국내 시장에 갇힌 ‘우물 안 투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해외로 눈 돌리는 투자자가 늘면서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 유럽의 ‘소피아 부인’이란 용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 투자자도 저성장·저금리·저수익의 3저(低) 시대에 접어든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투자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높지만 금융사들의 투자 역량이나 관련 제도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투자자들의 국내 편중 현상은 유독 심각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이 해외 펀드,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한 금액은 지난해 말 현재 4207억 달러(약 476조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27.5%에 그친다. 반면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GDP 대비 해외 투자 비중이 84.2%나 된다. 영국(139.2%), 프랑스(113.5%) 등 유럽 선진국은 100%를 웃돈다.
큰돈을 굴리고 투자 경험이 많은 한국의 부자들조차 해외 투자에 소극적인 편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8년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가들은 국내 부동산(29%)을 가장 선호했다. 국내 펀드와 주식을 찾은 자산가도 각각 10%를 넘었다. 하지만 해외 펀드(7%)와 해외 주식(1.8%)을 선택한 자산가는 적었다. 서울 강남권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자산가들도 해외 펀드나 해외 주식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이 잘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해외 투자는 국민연금 같은 공적기금이 이끌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해외 투자에서 공공 부문이 차지한 비중은 39.6%였다. 일본은 이 비중이 0.1%에 불과하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 부문 중심으로 해외 투자가 이뤄지다 보면 민간 금융회사들의 투자 역량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금융사 역량 높이고, 세제도 손봐야”
익명을 요구한 한 운용사 관계자는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국내에 익숙하거나 주가가 오르는 특정 지역에 ‘몰빵’하는 상품을 만들게 된다”며 “특히 국내는 수익이 난다 싶으면 몰려가는 ‘묻지 마 투자’가 심해 공들여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유인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창화 금융투자협회 본부장은 “금융사들이 해외에 적극 진출해야 더 많은 해외 상품을 만들고 수익률이 좋은 현지 상품을 국내에 선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자산시장의 2%도 안 되는 한국 시장에만 머물러 있다가는 투자 기회를 놓치거나 금융위기 같은 악재가 터졌을 때 손실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노후가 길어져 자산 굴리기가 더 중요해진 만큼 수익성과 안전성을 갖춘 해외 우량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강원경 KEB하나은행 대치동골드클럽 PB센터장은 “자산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 투자한 뒤 해외 자산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해외 주식 직접투자가 주목받고 있지만 양도소득세 22%를 내야 하고 거래 과정에서 환전 수수료가 발생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든다”며 “해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세금 제도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혁 gun@donga.com·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