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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까지 일… 힘들어 쓰러지겠다” 숨진 판사가 남긴 글에 동료법관 눈물

입력 | 2018-11-22 03:00:00

휴일 야근뒤 사망 여성판사 영결식
김명수 대법원장 참석 “판사 일상의 단면…법원가족 지킬 필요한 조치 찾을것”
문무일 총장도 전날 조문때 눈물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판사님의 업무 부담이 과중해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저부터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주말 야근을 한 뒤 자택 화장실에서 19일 숨진 채 발견된 고 이승윤 서울고법 판사(42·여·사법연수원 32기)의 영결식에서 최완주 서울고등법원장이 영결사를 읽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판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서울대 법대 95학번·사법연수원 32기 동기, 선후배 법관 등 100여 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이 판사가 힘든 것을 티내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다. 옆에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자책했다. 초등학생 1, 5학년 아들을 둔 이 판사가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기는 ‘슈퍼우먼’이라고 생각했을 뿐 과로로 쓰러질 줄은 상상을 못 했다고 했다. 곳곳에서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거나 오열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약 한 달 전 이 판사는 육아와 일을 함께하는 동료 판사들과의 인터넷 카페에 ‘예전엔 밤새는 것도 괜찮았는데 이제 새벽 3시가 넘어가면 몸이 힘들다. 이러다가 내가 쓰러지면 누가 날 발견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글을 남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동료 법관들은 이 글에 추모 댓글을 달고 있다.

영결식엔 김명수 대법원장이 참석했다. 김 대법원장은 조의를 표하며 “너무 안타깝다”며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영결식에 다녀온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렸다. 김 대법원장은 이 글에서 “고인이 일요일 저녁에 출근해서 월요일 새벽까지 판결문을 작성한 후 비명에 가신 것은 우리 법원 가족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대법원장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어 “임신, 출산과 육아, 그 밖에도 여러 모습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하여 매 순간 애쓰는 법원 가족들의 삶을 살피고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이 판사의 빈소엔 전날 밤늦게 문무일 검찰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찾아와 조의를 표했다. 이 판사의 남편 박성욱 LIG넥스원 상무(43·연수원 34기)는 검사 출신 변호사다. 빈소에서 유족들과 10분 넘게 얘기를 나눈 문 총장은 조문을 마친 뒤 눈물을 흘렸다. 문 총장은 “이 판사와 개인적인 연은 없지만 같은 법조인으로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19일 오전 4시경 자택 안방 화장실의 한쪽 벽면에 비스듬히 기대 쓰러진 채 남편에게 발견됐다. 8일 시부상을 치른 이 판사는 그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법원 청사로 출근해 새벽까지 야근을 했다. 경찰 부검 결과 사인이 ‘뇌출혈’이라는 결과가 나와 과로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호재 hoho@donga.com·정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