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연구자가 자율적으로 주제를 정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기초연구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윤리 교과서에서나 보던 ‘신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경계하고 바른 일을 하는 선비의 자세.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연구자의 윤리를 이야기할 때가 그랬다. 그는 ‘자율성’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노 이사장을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연구재단 서울청사에서 만났다. 올해 7월 9일 취임한 그가 단독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이사장은 취임 열흘 만에 터진 올해 한국 연구계의 최대 추문인 일부 연구자의 해외 부실 학회 참석 사건을 조사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연구 윤리는 연구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자 풍토”라며 “이를 저버린 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할 수 있도록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이사장은 “직무윤리, 표절 등 연구 부정, 연구비 부정 등 세 가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며 “올해 말까지 각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검증한 결과를 모아 연구재단 차원에서 연구비 부정 사용 등을 추가 정밀 정산해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 자체보다 오히려 그 이면에 숨은 연구자들의 인식이 더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그는 “한국연구재단 차원에서 부실 학회 참석을 예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등을 제공했는데, ‘헷갈리니 아예 참석해도 되는 학회를 재단에서 정해서 알려 달라’고 요청하는 연구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태도는 연구자가 자율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라며 “돈 들여 외국 학회 가면서 충실히 준비를 하지 않는 이런 ‘부실 활동’이 더 큰 문제가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노 이사장은 “미국은 정부 연구비의 47%를 기초연구에 투자하고 그 상당수가 연구자가 스스로 주제를 정하는 자율적인 주제인데, 한국은 20조 원의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중 7%만이 연구자가 스스로 주도해 제안하는 기초연구 사업에 투자되고 있다”며 “확대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자율성에 기반한 기초연구 사업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기초연구비는 사람과 미래에 투자하는 예산이라는 것이다. 한국 연구계는 성, 세대, 지역별 다양성이 부족하다.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성, 젊은 비전임 연구자, 지역 연구자를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 이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기초연구 사업이다.
노 이사장은 “지역 특화 분야 선도연구센터와 창의도전 연구 기반 사업, 생애 기본 연구 등 지역 연구자나 여성, 비전임 연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과제를 확대, 신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택과 집중으로 일관해 온 과거의 방식이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다양한 배경이 섞여 있는 게 곧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꼭 증명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