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루트 클뤼거 지음·최성만 옮김/384쪽·1만5000원·문학동네
독일문학연구가인 저자는 1942년 고향 오스트리아에서 추방돼 체코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등에서 지내다 1945년 초 극적으로 탈출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 독일연방공화국 아카이브
“내가 가스실에서 살해될 위협에서 벗어나 독자 여러분과 함께 전후세계의 해피엔드로 향해 가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나와 함께 기뻐하는 것을 내가 어찌 막을 수 있을까. … 내가 어떻게 해야 여러분이 안도의 숨을 내쉬지 않을까?”
‘삶은 계속된다’의 저자 루트 클뤼거. 오리건주립대학 제공
또한 그는 나치의 악행을 기억하는 현대 사회의 방식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많은 이들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며 과거 범죄의 일회성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의 일부가 여러 곳에서 어제도 오늘도 반복”됐으며 “강제수용소 자체가 예전에 있었던 것의 모사품이었다”. 인류는 과거의 범죄를 자기 자신이 느끼는 ‘불편한 마음에 대한 위로’ 혹은 ‘감상적인 기분’으로 환기해선 안 된다.
“여러분은 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그런 동일시를 하지 않으면 더 좋겠다. … 그러나 적어도 자극을 받기 바란다”는 저자의 말처럼, 과거의 끔찍한 사건들은 그저 박제하고 적당히 보상하며 마무리할 일이 아니다. 국가 폭력 피해자의 경험과 기억, 사후 영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하는 세계인들은 그의 말을 새겨들어 볼 만하다.
“여러분이 자와 컴퍼스로 미리 깔끔하게 그어놓은 어떤 틀 안에서만 여러분과 상관이 있다고, 이미 시체 더미 사진들을 견뎌냈고 공동의 책임과 동정심에 관한 여러분의 책무를 다했노라고 덮어 놓고 말하지 말라. 난 여러분이 논쟁적인 태도로 대결에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