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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숙입니다” 문자에… 4억 뜯긴 윤장현 前광주시장

입력 | 2018-11-24 03:00:00

“딸 문제로 곤란… 5억 빌려달라” 40대 주부, 권양숙 여사 사칭
호남 지역인사 5명에 메시지… 같은 문자 받은 인사 신고로 덜미




‘권양숙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딸 비즈니스 문제로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5억 원이 급히 필요하니 빌려주시면 꼭 갚겠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7월까지 광주·전남지역 자치단체장 등 지역 유력 인사 5명의 휴대전화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명의의 문자메시지가 떴다. 5명 중 일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명의로 된 문자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문자메시지를 받은 인사 대부분은 내용을 보고 전화를 걸었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장현 전 광주시장(69)은 문자메시지가 발송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응대했다. 윤 전 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노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다. 윤 전 시장의 전화를 받은 여성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권 여사라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주부 김모 씨(49)였다. 윤 전 시장은 이후 두 달 동안 김 씨의 어머니 통장으로 4차례에 걸쳐 현금 4억5000만 원을 송금했다.

김 씨는 당시 광주시장이던 윤 전 시장과 6, 7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전화 통화를 주고받으면서 철저하게 권 여사인 척 행동했다. 윤 전 시장은 경찰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는데 권 여사가 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에 급히 돈을 보냈다. 통화까지 했는데 목소리가 비슷해 진짜 권 여사인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에서는 윤 전 시장이 정치적 이득을 얻기보다 마음이 여려 사기 행각에 속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과 6범인 김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로 활동하면서 지역 유력 인사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확보했다. 휴대전화 판매사원으로 일하던 김 씨의 사기 행각은 같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은 한 지역 인사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들통이 났다. 해당 인사는 경찰에서 “문자메시지를 받고 통화를 하자마자 사기 사건으로 판단했다. 그대로 놔두면 큰일 날 것 같아 신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남지방경찰청은 김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광주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최근 송치했다. 검찰에 송치된 김 씨는 식사를 하지 않은 채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검찰은 김 씨가 전·현직 대통령 부인 흉내를 낸 치밀한 사기 사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윤 전 시장은 올 3월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할 때 재산 신고액이 6억9000여만 원이었다. 지난해보다 1억2000만 원 정도 감소한 금액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윤 전 시장이 김 씨에게 보낸 4억5000만 원을 땅을 팔아 마련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