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트로피 2라운드 7번홀 그린을 살피고 있는 신지은.
신지은(26)은 경기 후 인터뷰 도중 눈물을 쏟았다. 한 팀을 이뤄 호흡을 맞췄던 후배 전인지(24)가 자신의 어려움을 대신 말해줬을 때였다. 이 장면은 TV 생중계 화면을 타고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신지은과 전인지는 24일 경북 경주시 블루원 디아너스CC에서 열린 오렌지 라이프 챔피언스트로피 박인비 인비테이셔널 2라운드에 출전했다. 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로 나선 두 선수는 2명이 공 1개를 번갈아 치는 포섬 경기에서 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김지현과 오지현을 1홀차로 제쳤다.
2라운드 맞대결 펼친 신지은-전인지와 오지현 김지현
이날 신지은은 경기 내내 어딘가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티박스에서는 손목을 쉴새 없이 흔드는 왜글 동작을 반복했다. 페어웨이에서도 샷을 한번 하려면 빈 스윙을 여러번 했다. 퍼팅에도 애를 먹었다. 경기 해설을 맡은 LPGA투어 출신 박지은 위원은 “샷 한번 하는데 31초가 걸렸다, 어드레스를 길게 가져가면 오히려 몸이 경직되기 마련이다, 동계훈련 때 루틴을 빠르게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등 지적에 나서기도 했다.
신지은은 원래 슬로 플레이와 거리가 멀다는 게 한 대회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이번 시즌 후반기 들어 갑자기 입스(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찾아오는 각종 불안 증세)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특히 백 스윙 톱에서 다운스윙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적 부담에 따른 스트레스도 심했다. 골프에서 입스는 호환 마마 보다 무섭다는 얘기가 있다.
지난해 25개 대회에서 24차례 컷통과를 했던 그는 이번 시즌 26개 대회에서 6차례 컷 탈락하며 톱10에는 2번 들었을 뿐이다. 마음고생 속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상금 랭킹 53위로 시즌을 마쳤다. LPGA투어와 KLPGA투어의 상금 랭킹에 따라 출전자격이 부여되는 이번 대회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신지은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챔피언스 트로피 출전을 머뭇거렸다. 코스 내에서 낯선 행동이 나올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동료 선후배들의 격려로 참가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선배는 “함께 이겨보자”며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이번 대회 이틀 동안 신지은은 1승 1무를 기록해 승점 3점을 보탰다. 이날 4번 홀(파5)에서는 9m 이글 퍼팅을 넣어 갤러리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오히려 더 밝게 보이려 애쓰기도 했다.
18번홀에서 신지은-전인지 조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는 팀 LPGA.
경기 후 신지은은 “시즌 후반부터 어려움이 찾아 왔다. 빨리 고치고 싶다”고 울먹였다. 그는 또 “내가 한 건 이글 밖에 없는 것 같다. 후반에 인지가 중요한 퍼트를 많이 넣어줬다. 인지가 잘 해줬고, 계속 지고 있었는데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불어 넣어 줘서 좋은 승부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인지는 “호흡 잘 맞춰서 승리를 선물하고 싶었다. 잘 안 돼서 속상해 할 때 격려했고, 후반에는 언니도 많이 도와줘서 케미가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지은과 전인지가 승리를 보탠 팀 LPGA는 2라운드까지 중간 승점 합계 7,5점을 기록해 4.5점을 쌓은 팀 KLPGA에 3점 앞섰다. 신지은은 대회 최종일인 25일 싱글 매치플레이에서 조정민과 맞붙는다.
서울에서 태어난 신지은은 8살 때인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LPGA 투어 등록은 영어 이름인 제니 신으로 했지만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2016년 LPGA투어 데뷔 5년 만에, 133번째 도전 끝에 첫 우승을 이뤄냈다. 당시 그는 “골프는 너무 어렵다. 그래도 우승하니 행복하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신지은에게 골프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동료들이 있어 든든할 것 같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