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권의 대통령 권력 견제… 거세된 보수 야당 탓 기능 상실 靑 맘대로 안보·경제 밀어붙여 기울어진 운동장 대법원도… 정치화된 司法도 제동 못 걸고 좌파는 되레 위험한 질주 다그쳐
박제균 논설실장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한국에서 권력분립은 대체로 입법·사법권이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입법권을 가진 국회, 그중에서도 야당이 유력한 차기 주자를 중심으로 대통령을 견제하는 방식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이회창과 박근혜의 한나라당이 그런 기능을 했다. 특이하게도 이명박 대통령 때는 같은 당의 미래 권력 박근혜가 가장 큰 견제자였다. 박 대통령 때는 스스로 국회선진화법 통과라는 자충수를 두는 바람에 문재인을 중심으로 한 야당에 힘을 실어줬다.
이러니 한국당에서 목소리 큰 사람들의 면면에 실망한 보수 유권자 사이에서 “한마디로 창피하다”는 소리가 커진다. 국민의 힘이 안 붙는 야당이 권력 견제를 제대로 할 리 없다. 대여(對與) 전략도 없고, 무엇보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2년이 되도록 지리멸렬 오합지졸을 못 벗어나는 것이 이 당의 실력이자 현주소다. 청와대가 우려를 자아내는 외교안보 정책과 이념에 치우친 경제정책을 마구 밀어붙여도 거칠 것 없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들어 더 걱정스러운 것은 사법권력이다. 흔히 사법권을 최후의 권력이라고 한다. 권력과 이해(利害)의 갈등을 조정하는 마지막 해결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권에는 입법·행정권보다 더한 신중함과 엄정성이 요구된다. 그런 사법부가 대통령 권력을 견제한 대표 사례가 헌법재판소의 2004년 행정수도 이전 위헌과 지난해 박근혜 탄핵 결정이다.
그런데 지금의 사법부에선 진중(鎭重)함은 찾아보기 어렵고, 정치화(政治化)만 두드러졌다. 이는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현저히 기울어질 때부터 예고된 결과다. 김소영 대법관 후임까지 대통령이 임명하면 문 대통령은 취임 1년 8개월도 안 돼 대법원장과 대법관 14명 가운데 9명이나 임명하게 된다. 직전 박 대통령은 4년 2개월여 임기 동안 5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이달 초 대법원은 종교적 병역 거부에 무죄를 선고했다. 6월 헌재의 ‘대체복무제 입법 때까지 처벌’ 결정보다도 진보적인 판결을 내린 것은 이런 인적 구성 변화와 관련 깊다.
전임 대통령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권력분립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법의 정치화가 지금처럼 우려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과연 정치바람이 들어 흔들리는 현 사법부가 권력 견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나마 대통령 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쪽은 민노총을 비롯한 진보좌파 집단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들은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아니라 왜 더 빨리 가속페달을 밟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이다. 차량의 브레이크가 운전자를 보호하듯, 권력분립도 권력의 과속을 막아 권력자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권력의 브레이크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하는 터에 가속페달까지 밟는다면 훨씬 위험한 질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