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이으뜸의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下>
(22일 상편, 23일 하편에서 계속) 이틀째인 11월 4일은 삼일포 관광과 점심식사 후 다시 입경절차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방한용품을 준비하라고 해 따뜻한 옷들을 가져갔지만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금강산의 따뜻한 가을 날씨를 맘껏 느끼고 올 수 있었다. 삼일포는 신라시대에 경순왕이 관동팔경을 하루씩 머무르는 여행 중에 너무 아름다워 3일 머무르려다가 4일이나 머물렀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삼일포로 가려면 북한 주민들의 민가를 지나서 가야 한다. 주말인데도 학교에 가는지 알록달록한 책가방을 메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우리에게 먼저 손 인사를 건네주었다. 곳곳에서 밭일하는 소와 주민들도 볼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과는 달리 민가의 우체국 주변에 있던 북한 주민들이 우리 측 관광버스가 다가오자 모두 우체국 안으로 다 들어갔다. 아이를 들쳐 업은 채로 창문 틈새로 우리를 살펴보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보였다.
장군대를 지나 봉래대로 올라가는 길에는 출렁다리가 하나 있었다. 동시통과능력 15명이라는 경고 표지판에서 알 수 있듯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나갈 수 없는 공간이었고 이동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출렁다리를 지나가던 중 보트를 타고 출렁다리 쪽으로 이동하는 북한 주민들도 만났는데, 손 인사를 건네니 그쪽에서도 손인사가 왔다. 함께 인사를 나누고 봉래대로 이동했다.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듯 한 삼일포의 전경
봉래대를 지나 단풍각으로 이동하는 구간에서는 바위에 새겨진 선전문구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찾기 힘들지만 곳곳이 넓은 바위를 매직아이 하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처음 외금강 호텔 앞에 위치한 봉우리 바위에 주체라는 글자가 적힌 것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방북교육을 받을 때 이런 선전문구, 그림 등에 손가락질을 하지 말고 공손하게 가리켜야 한다는 사전 방북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선전문구들을 찾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손가락질을 할 뻔해서 조심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단풍각에서 다시 버스로 돌아오는 구간에는 연화대라고 하여 금강산 비로봉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약속한 입경시간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시간관계상 빠르게 이동했다. 삼일포를 둘러싸고 있는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 전경을 볼 수 있어 봉래대와는 사뭇 다른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뾰족한 바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구간은 불상 모양을 하고 있는 천개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천불동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산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나중에 꼭 금강산 등반을 하러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삼일포 관광은 금강산 안내원뿐만 아니라 전날 저녁만찬 때 함께 식사를 했던 북측 인원들도 함께 갔다. 평양에서 온 북측 사람들은 따로 버스를 탔다. 고위급 인사들은 벤츠, 도요타와 같은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 남측 사람들끼리만 타는 버스는 마치 요새 같은 기분으로 편하게 우리들만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남쪽으로
관광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먹는 북한 음식인 점심식사를 위해 금강산 호텔로 다시 이동하였다. 점심도 뷔페였다. 대부분의 음식들이 북한식으로 적혀있었지만, 북한에서 기름밥이라고 불리는 볶음밥은 그냥 볶음밥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식사 후 마지막 기념품을 구입하고 호텔직원에게 부탁해 금강산 호텔 옆 김일성, 김정일의 그림이 담겨진 전시물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에 호텔직원이 “빨리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참 좋을 텐데요”라며 말을 흐렸다. “남북관계가 더 좋아지면 곧 열리지 않을까요?” 라는 나의 답변을 들은 호텔직원의 눈에는 희망이 어린 듯했다.
북측이 입경절차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사진이라고 한다. 우리는 세관검사를 위해 시간을 맞춰서 도착했으나 북측 인원들이 지각을 하는 바람에 검사에 차질이 생겼다. 북측은 언론 기자단들의 사진들은 꼼꼼하게 검사를 한 것 같다. 그러나 300명이라는 많은 인원의 카메라를 하나하나 검사할 수는 없었던지 나머지는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했다.
세관검사를 마치고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왔다. 막상 북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남측으로 돌아오니 막혀있던 숨이 트이는 기분이 살짝 느껴졌다.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진행된 남측 세관검사에서는 북에서 가져온 출판물, 예술작품 등의 성격을 확인받았다. 북한의 예술작품들을 사온 몇몇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큰 문제없이 통과했다. 반납했던 휴대전화를 다시 받아 가족들에게 무사하다는 연락을 하니까 이제 진짜 대한민국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방북, 그 이상의 의미를 담은 방북
다른 여행지들과는 달리 휴대전화도 쓸 수 없고, 대북제제의 여파와 낙후된 시설들로 불편한 점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건네주는 북한 주민들의 인사, 또 함께 행사에 참여한 북측 사람들이 먼저 건네는 말 한마디, 그리고 남북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나눈 이야기와 찍은 사진들을 통해 어떤 여행지들보다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이고 우리가 통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금강산 광광지구의 금강산 호텔과 외금강 호텔은 완전한 북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현대아산의 흔적들과 북한의 모습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관광지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10년간 멈춰있었던 금강산이었지만 이전까지 얼마나 활발한 관광이 진행되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남측 사람들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남기고 갔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구석구석에 남북의 애틋함이 서려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충분히 통일을 염원하고 금강산의 아름다움 그리고 북한을 직접적으로 체험하였을 것이다.
내의 금강산 1박 2일 역시 단순한 관광을 넘어 굉장히 의미 있는 방북이었다고 생각한다. 평양 사람들과의 교류속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었다. 내가 그동안 공부한 북한의 이미지와 직접 느끼고 온 북한의 이미지는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북한도 변하였고 우리도 변하였다. 북한을 더 이해하고 남과 북이 같은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하는지를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느낀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통일에 기여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 민화협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으뜸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