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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공동등재 시큰둥 하던 北, 태도 바뀐 계기는…

입력 | 2018-11-26 17:34:00


각저총 씨름 모사도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사상 최초로 남북 공동등재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씨름은 5세기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角抵塚·씨름 무덤)’에 짧은 바지를 입고, 오른쪽 어깨를 맞대고 상대의 허리띠를 잡는 씨름의 모습이 기록될 만큼 씨름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한반도 고유의 민속경기다. 18세기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씨름 장면이 소개되는 등 사회 및 지역적 배경, 성별에 관계없이 즐겨 온 전통문화다.

씨름의 남북한 공동 등재가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이다. 하지만 이듬해 3월 북한이 씨름에 대해 유네스코에 단독으로 등재를 신청하면서 공동 등재는 흐지부지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2016년 11차 정부간위원회에서 북한의 씨름에 대해서 정보보완(등재 보류) 판정을 내렸다. 신청서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용어’와 ‘엘리트 체육 위주’로 작성된 점을 지적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2016년 3월 유네스코에 씨름 등재신청서를 냈고, 북한 역시 2017년 3월 재도전에 나서면서 원치 않게 경쟁체제가 돼버렸다.

20세기초 씨름하는 모습

반전의 계기는 올 상반기.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씨름 공동 등재 아이디어가 다시 부각됐다. 불을 붙인 건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었다. 대북 제재에 대한 부담 없이 남북 화해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분야가 유네스코의 과학 문화 분야라고 여긴 아줄레 총장은 올해 8월 적극적으로 남과 북에 씨름 공동 등재를 권유했다. 한국은 이를 수락했으나 북한은 거절하겠다고 밝혔다. 각각 따로 등재를 신청해도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어서 굳이 같이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꺼져가던 남북 공동 등재 불씨를 되살린 건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이었다. 프랑스 순방 길에 아줄레 사무총장과 만난 문 대통령은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씨름 공동 등재가 좋은 아이디어다. 다시 추진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이병현 주유네스코 대표부 한국대사는 파리에 나와 있는 김용일 주유네스코 북한 대사와 만나 문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했다. 북한은 처음에는 “남북 경제 협력 사업에 집중하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세계 평화에 대한 북한의 강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자 남북 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득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북한 외무성에서 수용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에는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이 더뎌지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어려움에 처하자 이에 대한 화답의 차원도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줄레 사무총장도 평양에 유네스코 사무총장 특사를 파견해 설득하고, 남북 공동 등재 절차가 “세계 평화를 위한 좋은 방향”이라며 예외적으로 서둘러 절차를 진행하도록 배려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원칙적으로 남북이 각각 낸 신청서를 철회한 후 다시 공동 등재 신청서를 작성해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완료된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의 심사 역시 따로 진행됐고, 대한민국의 씨름과 북한의 씨름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애초 13번째(북한)와 30번째(대한민국) 심사 대상이던 씨름을 26일 긴급안건으로 변경해 남북 공동등재로 최종 결정했다.

유네스코는 “씨름은 한반도 전 지역에서 널리 행해지는 운동 경기로, 예로부터 한민족은 노동에서 벗어나 휴식에서 취할 때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씨름을 즐겼다”며 “공동등재에 대한 양국의 의지를 인식하고, ‘한민족의 씨름’을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