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떨어지고 임금은 올라… 작년까지 엄두 못냈던 자녀 선물 쇼핑대목에 수백 달러 지출… 11~12월 소비 최대 4.8% 증가 전망 트럼프 “저유가는 나의 공” 셀프칭찬
미국 뉴저지주에서 와인 도매회사 지게차 기사로 일하는 제임스 스미스 씨(42)는 올해 말 쇼핑 대목에 네 자녀에게 줄 스쿠터, 디즈니 공주 인형 등 선물을 사는 데 수백 달러를 쓸 생각이다. 그는 미국 최대 할인행사 기간인 ‘블랙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 날 금요일인 23일)에 가족과 함께 월마트 매장에서 쇼핑을 했다. 지난해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다. 스미스 씨의 씀씀이가 커진 것은 일자리를 얻고 임금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도 최근 일하는 식당에서 승진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스미스 씨 사례를 소개하며 “오프라인 매장 방문자는 줄었지만 저소득층 미국인의 지출과 온라인 쇼핑은 늘어 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시즌 초반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고 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저소득층이 두둑해진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월마트 매장에서 일하는 마이클 리먼 씨(29)의 임금도 최근 올랐다. 그는 “지난해에는 딸에게 뭘 사줄 형편이 못됐지만 올해는 아주 크진 않아도 뭔가 해줄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나아졌다”며 “이번 블랙프라이데이엔 일하느라 선물을 사지 못했지만 나중에 선물을 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유가도 저소득층 주머니 사정을 나아지게 만들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추수감사절(22일) 전날 기준 미국 평균 휘발유 값은 갤런(3.79L)당 2.6달러로 한 달 전 2.85달러보다 0.25달러 떨어졌다.
전미소매협회(NRF)에 따르면 올해 11∼12월 소비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4.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크 잰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 경제분석가는 “올해는 저소득층 가구에 성공적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며 “저소득층 지출 증가세가 중간 및 고소득 가구를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매력이 커진 저소득층 소비자들을 이번 쇼핑 시즌에 온라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통회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 아마존은 정부 보조를 받는 사람들에게 프라임 멤버십 가입비를 깎아 준다. 월마트는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할 때 정부가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푸드 스탬프’로 살 수 있게 허용했다.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시즌에는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수령하는 ‘클릭앤드컬렉트(Click and Collect)’ 매출이 73% 증가했다. 어도비시스템에 따르면 수요일(21일)부터 블랙프라이데이까지 미국 인터넷쇼핑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26.4% 증가한 123억 달러(약 13조9000억 원)로 추정된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유가 하락이 자신의 공이라며 ‘셀프 칭찬’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트위터에 “유가가 떨어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생큐, T(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썼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의혹으로 압박한 뒤 이를 지렛대로 삼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원유 감산을 막았다는 것을 자랑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는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감산을 원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트럼프 대통령의 유가 하락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트위터에서 “유가가 낮아지고 있다. 대단하다”며 “사우디에 감사한다. 더 낮추자”고 적었다.
뉴욕=박용 parky@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