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여당 중진 의원 A가 식사 자리에서 느닷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레이펑(雷鋒)은 중국 문화대혁명의 아이콘이다. 인민해방군 병사였던 레이펑은 스물두 살이던 1962년 랴오닝성 푸순에서 사고로 순직했다. 그의 유품인 일기장에는 마오쩌둥 등 공산당 지도자의 어록을 적어 두고 학습한 흔적과 “녹슬지 않는 혁명의 나사못이 되고 싶다” “마오에 대한 충성이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이런 사연을 접한 마오쩌둥은 1963년 “레이펑 동지에게 배우라(向雷鋒同志學習)”는 지시를 내렸고 레이펑은 순식간에 국민 영웅이 됐다. 그 시절 레이펑을 향한 찬양은 마오쩌둥에 대한 충성과 같은 의미였고, 그 반대말은 당과 국가에 대한 반역이었다.
전성철 정치부 차장
동석자들이 A에게 “우리가 지금 그런 상황이라는 뜻이냐”고 물었다. 그 무렵 이뤄진 ‘경제 투톱’ 교체가 문제라는 뜻이냐는 질문이었다. A는 끝내 답을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고 A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문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 조선업 등 제조업의 실적 개선을 언급하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이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자동차업계 실정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당장 “어디에 물이 들어온다는 거냐?”는 반응이 나왔다. 자동차 생산은 8월과 10월 전년 동기 대비 늘었지만 9월에는 18.1%나 감소했다.
게다가 10월의 생산 증가는 전년도에는 추석 연휴가 10월 초였지만 올해는 연휴가 9월에 걸리면서 조업일수가 늘어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여권에서조차 “청와대 참모들이 거짓 통계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다 퇴진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정치권에서 ‘블루칩’ 대접을 받는 것도 이런 상황과 닿아 있다. 경제지표 악화에 책임을 져야 할 김 부총리가 도리어 인기를 누리는 것은 대통령의 경제 현실 인식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다.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눈과 귀가 돼야 할 사람이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외부의 시각과 자꾸 차이가 난다면 참모진 구성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봐야 할 때다. 현실 인식이 틀려서는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수 없다.
전성철 정치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