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그 당시 이탈리아는 난리가 났다. 파비아 종탑의 붕괴는 피사의 사탑 안전에 경종을 울렸다. 그래서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피사의 사탑 문을 닫고 보수하기 시작했다. 피사의 사탑은 높이가 56.67m, 계단이 297개, 무게는 1만4500t인 대리석 건축물이다. 1173년 피사의 사탑을 건설할 당시, 탑의 지반이 위치하는 남쪽 3m 깊이의 모래와 점토가 북쪽에 비해 더 약하고 부드럽다는 걸 몰랐다. 이 때문에 탑이 남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피사(pisa)’라는 단어 자체가 늪의 땅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탑의 3층이 세워질 무렵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걸 인식했으나 멈출 순 없었다. 그래서 4층부터 8층까지 5개 층은 탑이 안정적이도록 무게중심을 맞춰 가며 쌓아올렸다. 그 기간은 200년이나 되었고 이로써 약간 휜, 말 그대로 기울어진 탑(斜塔)이 만들어졌다. 이후 피사의 사탑은 꾸준히 기울어졌다. 수직을 기준으로 5m가량 벗어난 것이다. 즉, 남쪽으로 5.5도 기울었다.
피사의 사탑이 바로 선 원리는 다음과 같다. 매우 부드러운 스펀지 위에 돌이나 쇠로 된 탑을 최대한 바로 층층이 쌓는다고 생각해보자. 스펀지는 무게에 해당하는 만큼 압축됐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똑바로 탑을 하나씩 쌓더라도 언젠가 탑이 기울고 쓰러지는 걸 보게 된다. 탑의 한쪽에 힘을 주면 기울어짐은 가속화하고 빠르게 무너진다. 이 지점에서 몇 개를 쌓았고 어디가 무게중심인지를 알아낸다면 반대편으로 힘이 더 실리도록 조정할 수 있다. 특히 바닥을 반대편으로 눌러주면 더 쌓지 않고도 무게중심을 이동시킬 수 있다.
무게중심이란 물체를 매달거나 받쳤을 때 수평으로 균형을 이루는 점이다. 외발자전거와 외줄타기가 무게중심과 관련 있다. 또 친구들과 시소를 탈 경우 무거운 친구는 무게중심에 가깝게 앉고 가벼운 친구는 최대한 멀리 앉아야 평형을 이뤄 탈 수 있다. 신기한 건 피사의 사탑이 공학적으로 무너지는 지점 바로 그 층의 높이까지만 딱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피사의 사탑은 무게중심이 남쪽으로 편향돼 아주 천천히 긴 시간 속에서 기울어지고 있다. 어느 탑이든 지반이 말랑말랑하면 지탱하는 힘에 균열이 생긴다. 피사의 사탑이 조금만 낮았거나 혹은 조금만 더 높았으면 어땠을까. 피사의 사탑이 너무 낮으면 볼품없고 훨씬 높으면 오래전에 무너졌을 것이다.
건물만 튼튼하다고 기울어짐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지진 등 땅속의 물과 모래가 분출돼 그만큼 공간이 생겨 건물이 기우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홋카이도 지진 때 콘크리트로 물이 새어 나오는 액상화 현상으로 도로가 파이고 건물이 기울었다. 반면 피사의 사탑은 모래 같은 연성 지반이라 지진에 유연하게 대처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피사의 사탑같이 기울어짐의 과학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중국의 후추 탑이나 독일의 주르후젠 교회 사탑과 바트프랑켄하우젠 교회 사탑은 6도 내로 기울어 있다. 피사의 사탑 역시 약 5도 기울어짐에서 안정을 찾았다. 물론 탑의 높이와 무게, 건축 기간과 석조의 재료, 지반의 성질과 지질학적 변화, 무게중심과 힘의 분산 정도, 날씨의 변동과 화학적 변화, 관광객 수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 그러니 전문가들이 말하듯 앞으로 최소 200년 동안 피사의 사탑이 더 버틸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