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당시 담당검사·박준영 변호사 등 동석해 文총장, 피해자 자녀에 편지…“아픔을 아름다움으로”
문무일 검찰총장이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유린 사례로 알려진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참혹한 증언에 휴지 뭉치를 흠뻑 적실 정도로 눈물을 쏟으며 사과를 전했다. 국가차원 첫 사과다.
문 총장은 27일 당초 예정된 행사 시간보다 15분가량 빠른 오후 2시43분께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 도착해 한종선씨 등 형제복지원 피해자 20여명을 만나 한 명씩 악수하며 인사했다. 당시 담당검사인 김용원 변호사와 대검찰청 산하 진상조사단의 박준영 변호사, 대검 간부들도 자리했다.
문 총장은 “비상상고를 포함해 피해자들을 맞이하는 시간을 당겨보려 했지만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사건 재검토를 하며 권고를 할 예정이 있어 법률적 절차를 다 취한 뒤인 오늘로 날짜를 잡게 됐다”며 “너무 늦게 만나뵙게 돼 정말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형제복지원에 세 차례나 끌려갔던 김대우씨는 “잡혀가기 전 부산성지국민학교 3학년 11반 학생이고 집은 바로 여기서 50미터도 안 된다고 했는데도 경찰관들은 믿지도 않았고 차 안에서 구타와 감금, 폭행을 당했다”고 울컥했다. 김희곤씨도 “우리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달라. 총장님이 나와 한발 한발 디뎌가는데 조금의 위로라도 얻고 싶다”고 눈물을 보였다.
부산 오빠집에 놀러갔다 형제복지원에 강제 입소한 박순이씨는 “경찰에 잡혀갔지만 29년 동안 우리를 죽인 건 검찰도 책임이 있다. 조금이나마 우리가 어렸을 때 똑바로 수사했다면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실상을 알리고자 내부에서 난동을 일으켰던 안기순씨는 “500명 넘는 수많은 영혼이 그곳에 잠들어 있다. 관심받고 치료와 혜택을 받았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도 있었다”며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통과돼 사회 소수자, 고통받는 힘없는 약자들이 삶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최승우씨는 “(저뿐 아니라) 동생도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트라우마가 엄청나게 크게 자리잡아 2009년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악몽 속에 살아왔지만 이제라도 국가가 앞장서 억울한 피해생존자들 마음이라도 달래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하늘색 봉투에 사과문을 담아 피해자들에 한 부씩 배포한 문 총장은 준비된 자료를 읽어내려가면서도 목이 메는 듯 수차례 발언을 멈췄다.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숙이고 감정을 추스르기도 했다.
문 총장은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 종결하고 말았다는 과거사위 조사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기소한 사건마저도 재판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다. 이런 과정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고 일어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어 “압력에 굴복해 법률가로 올바르게 처신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개선을 하는 일이 첫번째”라며 “총장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을 눈물을 보여드린 것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 한 번 죄송스럽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용원 변호사는 “문 총장 사과는 이 사건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을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크게 환영함과 동시에 문 총장 결단을 높게 평가한다”며 “대법원은 과거 전두환정권 시녀로 너무나 자명한 법리를 왜곡해가며 충성행각을 한 것에 참회어린 신속한 판결을 할 것과 국회가 하루빨리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 총장은 면담이 끝난 뒤 사인해달라는 박순이씨 부탁을 받고 박씨 자녀에게 하늘색 봉투에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는 편지에서 ‘엄마의 아픔은 우리나라의 아픔이었다. 아픔을 우리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내길 기대한다’며 행복을 기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