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위한 이사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민정이 아빠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민정이 아빠의 회사는 이전 살던 집과 가까웠다. 이사 후 교통이 막히기로 유명한 강남에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도로가 밀려서 짜증이 났고 몸은 몸대로 녹초가 되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나 여가 시간도 줄어들었다. 주유비는 물론 생활비도 늘어나 경제적으로 쪼들려서 이런저런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집에 오면 편안했는데, 지금은 집에 오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다 불편해졌다.
사실 민정이의 아빠는 이사를 끝까지 반대했었다. 하지만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는 아내의 말에 어렵게 이사에 동의했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나서 보니 아이에게도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그동안 공부도 영어도 잘했던 아이는 이곳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로 묻혀버렸다. 자신감이 부쩍 없어지고 기가 죽은 것이 우울증이 생긴 듯도 보였다. 아이는 아빠만 보면 “아빠, 우리 다시 옛날 집으로 이사 가면 안 돼?”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사를 주장한 엄마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살림이 빠듯해진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아이의 공부가 영 시원치 않았다.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아이는 중간고사에서 처음으로 80점대를 두 과목이나 받아 왔다.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교육 환경 하나만 보고 가족 구성원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이사는 옳지 않다고 본다. 교육 환경 하나만 좋아지고 나머지는 모두 나빠진다면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이사는 가족 구성원들의 동의하에 삶의 질을 높이고 가족의 안정을 위해 결정되어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약간의 불편함이 발생해도 이 정도면 감수할 수 있겠다는 합의가 되어야 한다. 단지 좋은 학군이라는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이사하는 것은 무리수가 있다.
사실 부모로부터 “너 때문에 이사를 가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면 아이는 참으로 난감하다. 여기에 좋은 친구도 많고, 인정도 받고 있는데 ‘꼭 가야 하나?’라는 의문도 생기고, ‘왜 가야 해?’라는 반감도 생긴다. 혹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한편으로는 ‘엄마 아빠의 기대만큼 못 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도 든다. 전학도 가기 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가진 진짜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렵다. 전학을 가서 원래 하던 만큼도 못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다.
게다가 아이에게 지나친 투자를 하게 되면 부모는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보상을 원하게 된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진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무심결에 “너에게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라는 말을 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그런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투자하는 만큼 뽑아내고 싶다. 그것이 성적이든, 아이가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든 말이다.
물론 부모의 말이 아이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어쩌다 내뱉은 말을 오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가 대가를 바라면서 교육적 지원을 하는 상황은, 그것이 단지 아이의 오해라고 하더라도, 좋은 교육 환경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 되면 아이는 부담스러워서 잘하던 공부도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초중고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습 능력을 발휘하려면 정서적인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친구나 선생님과의 관계가 삐거덕거리거나 부모님과의 관계가 불편해서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으면 똑똑한 아이도 공부를 잘하기 어렵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