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 갚진 경험이었어요.(×)(← 값진 경험(○))
대개 이를 우연한 맞춤법 오류로 취급한다. 이런 우발적 실수까지 민감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뉴스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이다. 구어를 적은 것이니 오타가 생기게 마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옳은 말이다. 맞춤법 자체보다는 목적에 맞는 의사소통이 더 중요하다.
맞춤법은 공식적인 상황을 위한 표기 원칙이다. 공식적 표기로 공식적 의사소통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방송 프로그램은 공식적 상황이다. 더구나 인기리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자막은 그 영향력이 더 크다. 그래서 ‘갚진’이라는 잘못된 표기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오타 자체가 아니라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를 짚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음절의 끝에서 7개의 자음밖에 발음하지 못한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말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다. ‘값’이든 ‘갚-’이든 음절의 끝의 소리가 바뀌어야 소리가 난다는 의미다. 그러면 말한 사람의 발음에 주목해 보자. [갑찐 경험]이라 말했다. 정확한 표준 발음이다. ‘갚진 경험(×)’이든 ‘값진 경험(○)’이든 발음은 똑같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
문제는 위에서 다룬 것이 우리말의 대표적 음운현상이라는 점이다. 말소리에만 의존해 적으면 언제든 잘못 적을 수 있다는 의미다. 컴퓨터의 맞춤법 검사기도 ‘갚진(×)’의 오타를 잡아 내지 못한다. 실수가 많아질 수 있는 상황 하나가 더 추가된 셈이다. 우리가 좀 더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발음이 같아서 오타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컴퓨터가 잡아내지 못하는 오류 문장 하나를 보자.
● 모범으로 삶을 일이다.(×)
‘삶다’와 ‘삼다’는 소리가 같다. ‘닮다’와 ‘담다’도 마찬가지다. 발음으로만 본다면 오타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소리에 의존해서는 큰일이 생긴다. 모범으로 삼을 것을 삶아 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맞춤법을 다룰 때는 언제나 소리와 의미를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