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음주운전 비극]‘만취 사고대처’ 더 큰 피해 불러
참혹한 음주사고 현장 9월 24일 오전 5시 반경 서울 서초대로에서 조모 씨(25)가 몰던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택시와 충돌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작은 사진). 이 사고로 차량이 크게 파손되면서(큰 사진) 조 씨의 고등학교 후배인 동승자 이모 씨(24)가 숨졌다. 사고 당시 조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0.109%였다. 서울 서초경찰서 제공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인생이 망가진 친구를 도와 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음주운전 차량에 동승했다가 사고가 난 지 7시간 반 만에 발견되는 바람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 친구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연평균 4만 명 이상이 음주운전으로 숨지거나 다친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음주운전 사고를 보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술에 취한 사람들은 계속 운전대를 잡고 있다.
27일 청주청원경찰서에 따르면 23일 오전 5시 57분경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한 도로에서 면허 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16% 상태에서 김모 씨(26)가 몰던 승용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김 씨와 조수석에 탄 A 씨(26)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고, 김 씨는 “차량엔 나와 조수석 친구, 두 명만 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도 이를 믿고 차 안을 살피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직후 운전자와 조수석 동승자가 크게 다치지 않은 상태로 경찰관 물음에 비교적 또박또박 진술해서 뒷좌석에 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뒷좌석에는 김모 씨(22·여)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뒷좌석에 탄 김 씨는 사고가 난 지 7시간 35분 뒤에야 차량 수리 업체에서 발견됐다. 제때 치료받을 시간을 놓친 것이다. 척추 수술을 받은 김 씨는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고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자 김 씨는 술집에서 소주 3병 이상을 마시고 노래방과 국밥집을 들른 뒤에 운전대를 잡았다. 김 씨는 “노래방에서 나온 이후로 기억이 없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27일 운전자 김 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 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A 씨는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 후배 목숨 앗아간 음주운전
9월 24일 서울 서초대로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09%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한 조모 씨(25)의 옆자리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9년간 알고 지낸 친한 동생 이모 씨(24)가 앉아 있었다. 유턴을 하던 조 씨의 차량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택시와 충돌했고 이 씨는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조 씨는 이 씨를 남겨둔 채 도주했고, 이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0여 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끔찍한 피해를 낳는 음주운전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사회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해야 하지만 갈 길이 멀다. 23일에는 김종천 당시 대통령의전비서관이 면허 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20% 상태에서 운전하다 적발됐다. “음주운전은 살인”이라고 했던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은 지난달 31일 혈중알코올농도 0.089%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구특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