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1> 서울 금호동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
서울 성동구의 작은 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에서 ‘우리 마을 상담소’라는 상담사 양성 강의를 들은 도서관 이용자들이 27일 책을 소재로 한 심리 치유 소모임을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책과 사람의 향기를 함께 맡을 수 있는 곳, ‘작은 도서관’. 1960년대 새마을문고를 시작으로 꾸준히 발전해 온 ‘작은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열고 만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함께 사는 사회’의 풀뿌리이자 모세혈관인 셈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내년 전국에 200곳이 넘는 작은 도서관이 새로 태어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그동안 모범적으로 운영해 온 작은 도서관들을 조명한다. ‘작은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
아파트촌 한가운데 자리한 서울 성동구 응봉근린공원에서 지난달 20일 작은 축제가 열렸다. 천연 염색, 재생종이 엽서 만들기, 민화 책갈피 만들기, 책 낭독, ‘그냥 멍때리기’ 등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에 인근 주민 300명이 몰렸다. 소문을 듣고 경기 남양주시에서 찾아온 이도 있었다. ‘나랑 같이 놀자’(19회)라는 제목의 이 축제를 주최한 곳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공원 안의 작은 사립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책엄책아)다.
재개발로 옛 모습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면서 ‘골목 문화’가 사라진 이 동네에서 ‘책엄책아’는 사람들이 만나는 ‘골목’이 되고 있다.
“경기도에 살다가 2014년에 여기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는 좀 삭막하다고 느꼈어요. 이웃과 교류할 공간도 마땅치 않고, 서로 만날 의지도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책엄책아에서 이웃이 생기고, 삶에 활력도 생겼죠.”
아이 둘을 키우는 최희정 씨(36)의 말이다. 최 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들러 바느질과 인문학 공부를 함께하는 도서관 동아리 ‘꽃마리’ 등에서 활동한다. 책엄책아의 핵심은 동아리다. 낭독 모임, 민화 그리기, 그림책 공부 모임 등 8개 동아리에서는 각각 4∼14명의 회원이 활동한다. 특히 성인 동아리가 활발하다.
10월 ‘책엄책아’의 ‘마을 숲 정원에서 예술하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솔방울로 나무를 장식하는 모습. 책엄책아 제공
어른 그림책 학교를 비롯해 도서관의 다양한 프로그램마다 30∼40명이 참여한다. 이는 여러 소모임으로 이어진다. ‘우리, 마을 문화기획자에 도전한다’ 강좌 수강생들이 만든 소모임이 ‘몰랑’이라는 무크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동명의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책엄책아는 2001년부터 성동구 행당동에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한 작은 도서관계의 ‘큰형님’ 가운데 하나다. 행당동 시절 왕십리광장에서 연 ‘나랑 같이 놀자’ 축제에도 주민 1000명이 모여드는 등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2016년 지금의 금호동3가로 이전했다. 현재 도서관은 성동구가 공간을 지원했고, KB국민은행과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도움으로 리모델링했다.
도서관을 이용하다 사서로 일했던 우미선 책엄책아 대표(52)는 행당동 시절 도서관 이용자들이 소아병동이나 장애인복지시설에서 했던 책읽기 봉사 모임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우 대표는 “아파트는 익명성이 강한 환경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싶은 건 어디나 마찬가지”라며 “작은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건강한 문화를 이웃과 나누는 곳”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