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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한반도 여성 인권, 통일 후 더 후퇴할까

입력 | 2018-11-28 09:56:00


Q. 북한 정권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어버이 수령으로 호칭하고 선군정치를 하는 등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한 국가입니다. 언론과 연구자들이 진행한 탈북자 인터뷰를 통해 북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의 성평등 의식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취약한 여성 인권으로 인해 남녀갈등이 심한 남한 사회의 여성 인권이 통일 후 더 후퇴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류태림 경희대 정치외교학과(12학번) 졸업(아산서원 14기)

A. 그동안 통일에 대한 논의는 ‘민족’과 ‘국가’에 대한 거대담론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입니다만, 통일 이후의 사회를 살아가야 할 우리들에게 좀 더 와 닿는 고민은 어쩌면 분단 70년의 세월 동안 남북한 간에 발생한 현격한 문화 격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통일 이후의 성평등 의식이나 인권의식의 차이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북한의 성평등 의식은 남한보다 열악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북한이탈주민과 심층면접을 진행하다보면 북한은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집안일이나 육아가 여성의 역할로 간주되며 ‘조선여성다운’ 정형이 요구되는 등 남존여비의 관념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여성들의 정치 참여 및 고위직(간부)의 비율도 저조한 편입니다. 가정폭력이 발생해도 이를 구제할 수 있는 조치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북한에서는 오랜 경제난으로 배급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직장에 나가는 남성들이 배급이나 임금을 전혀 받아오지 못하게 되자 여성이 돈을 벌지 않으면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여성들은 장마당에서 물건을 팔거나 중국과의 소규모 무역(또는 밀수)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남성들이 돈벌이를 하지 못하고 집에서 가사와 육아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남자들은 ‘낮전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햇빛이 밝으니 전등이 필요 없겠죠? 그만큼 남성들이 쓸모없어졌다는 농담 아닌 농담인 셈입니다. 이에 남성들이 가사와 육아를 돕는 경우도 더러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성공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지만, 적어도 가정 내에서 여성의 발언권은 커졌다는 증언이 다수 수집되었습니다.

북한이탈여성들은 경제생활과 가사 및 양육 등을 도맡아 하는 고된 생활을 이어가다보니 여성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이 곧 여성 인권의 신장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성평등 의식의 빈곤과 오해는 비단 남성 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통일 이후 북한주민들이 상당한 혼란을 겪는 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 다양한 사회문화 교류를 통해 북한에게도 여성인권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2001년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하였고 2010년에는 『여성권리보장법』을 신설하기도 했습니다. 북한도 여성인권에 대한 국제규범을 따르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일원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설득을 좀 더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통일 이후 우리 사회가 여성인권의 차원에서 후퇴할 것이라고 염려하기보다는, 북한이 여성인권을 개선시켜 좀 더 국제사회로 나아올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통일 이후 북한주민들의 인권 의식을 고양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지금부터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김수경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