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 수장을 상대로 한 초유의 화염병 테러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일”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화염병 테러 사건 발생 후 김 대법원장의 첫 공식 언급이다.
김 대법원장은 28일 오후 1시49분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 11층 대접견실에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민갑룡 경찰청장과 만나 자신을 겨냥했던 화염병 테러에 대해 “이번 일은 일선 법관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매우 안타깝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을 해야 하는 법관이나 직원들에게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중대한 일”이라며 “앞으로 법관이나 직원들이 두려움 없이 재판업무를 할 수 있도록 신변보호와 청사보안을 철저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면담은 김 장관과 민 청장이 대법원장 차량 화염병 테러 사건에 대한 사과와 유감의 뜻을 전하기 위해 대법원을 찾으면서 이뤄졌다.
김 장관은 김 대법원장에게 사건 경위와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보고했다. 면담은 시작 약 14분 만인 오후 2시3분께 끝났다.
면담장에서 김 장관은 “개인이든 단체이든 법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근저를 흔들고 우리 공동체가 쌓아 온 가치와 제도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정부는 법과 질서를 견고히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면담 이후 취재진과 만나 화염병 테러 사건에 대해 “양극화 등 여러 사회적 불안 요인을 들어주거나 해결해주는 문제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진단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사적 복수행위 같은 것이 용납된다면 가치와 질서가 파괴된다. 이런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면담 이후 ‘화염병 테러를 했던 남모(74)씨가 대법원장 차량을 가로막은 전력이 있었는데 사전통보가 없었나’라는 취재진의 지적에 “그런 점들에 대해 저희가 일련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파악하고 있다. 그에 따른 사법조치를 할 것”이라며 “위험한 것들에 대한 경계가 조금 소홀함이 없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이는 남씨가 지난달 10일 대법원 국정감사날에 대법원장 차량에 달려들었다는 사건에 관한 언급이다. 남씨는 민사소송 하급심 판결 결과에 대한 항의 표시로 대법원 인근에서 1인 시위 등을 벌이던 중 김 대법원장의 차량에 달려든 전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오전 9시48분께 의전차량을 타고 대법원에 출근하는 과정에서는 테러 사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대법원에 들어서면서 ‘어제 사태에 대해 한 말씀 해달다’, ‘어제 사태가 사법부 불신에 원인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이 없었다.
한편 이날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화염병 테러 사건과 관련한 사법부 신뢰 문제에 대한 질문에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화염병 테러 사건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 사법부는 이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심판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면 게임은 종결될 수 없고, 사회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앞서 27일 오전 9시8분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인근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남씨는 김 원장이 탑승한 차량을 향해 인화물질이 든 500㎖ 페트병을 던졌다. 김 원장 출근길에 벌어진 일이었다.
과거 극우성향 단체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대법원장 차량에 계란을 투척한 일은 있었지만 화염병이 테러 도구로 동원된 일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다.
남씨는 돼지사육 농장 친환경인증 갱신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당사자로 판결에 불만을 품고 노숙농성 등을 해오다가 지난 16일 패소가 확정된 이후 김 원장 차량을 공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