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금융이 강한 경제 만든다]3부 이제는 ‘포용적 금융’ 시대 <1> 생색내기용 정책에 경직적 운용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은행권이 수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에서 사회공헌 사업 등을 강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포용적 금융’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도 한몫했다. 금융업의 외형적 성장에 발맞춰 한국 금융회사들도 ‘포용적 금융’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선진 금융사들과 비교해 질적으로 미흡한 편이다. 무엇보다 ‘포용적 금융’을 내세우는 정부도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는 지적이 많다.
○ “포용적 금융은 투자”
포용적 금융은 2009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처음 공식 의제로 다뤄진 뒤 세계 각국 정부와 금융권이 동참하고 있다. 포용적 금융이 정부의 시장개입이라는 인식보다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하고 금융회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투자’라는 분위기도 커지고 있다. 피터 모건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코노미스트는 “148개국을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 대출이 증가한 금융회사가 부도 가능성이 낮아졌고 금융 안정에도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국내 금융사들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은행권의 사회공헌 활동 지출액은 1조1266억 원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최대 규모다.
하지만 금융사들이 사회공헌 예산만 늘릴 뿐 서민층이나 중소·벤처기업에 자금 숨통을 터주는 데는 인색하다는 비판이 많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돈을 몇 푼 더 낸다고 포용적 금융을 하는 게 아니다. 담보가 부족한 기업과 서민에게도 저금리로 대출해줄 수 있는 새로운 신용평가 기법을 개발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직된 빚 탕감 제도
대표적으로 신용회복위원회가 금융회사와의 협약을 통해 ‘개인워크아웃’ ‘프리워크아웃’ 제도로 채무자의 원리금을 감면해주고 있지만 요건이 일률적이어서 다양한 채무자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20대 직장인 A 씨는 대학 때 한국장학재단에서 빌린 학자금 1300만 원을 갚지 못한 채 카드론을 썼다가 연체 위기에 빠졌다. 채무조정을 받기 위해 상담센터를 찾은 그는 “연체 기간이 한 달이 안 된 채무자는 2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아야 빚 탕감을 신청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A 씨는 “다중채무자를 피하려고 1곳에서만 빚을 냈는데, 탕감을 받으려면 다른 곳에서 더 빚을 내야 한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취약계층의 채무 감면율도 낮은 편이다.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개인워크아웃 대상자 10명 중 4명은 감면율이 10%도 안 됐다.
○ 서민에게 ‘그림의 떡’인 서민금융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 ‘바꿔드림론’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서민금융 상품이 쏟아졌지만 실제 취약계층의 이용은 미미하다. 금융위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신용등급 8∼10등급의 저신용자가 4대 서민금융 상품을 이용한 비중은 9.2%에 불과했다. 서민금융 정책자금의 60% 이상이 6등급 이상에게 흘러 들어갔다.
조은아 achim@donga.com·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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