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철 이어 징용재판 2건 원고승소
“만세, 이겼다”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대법, 신일본제철 이어 “미쓰비시도 징용 피해자 배상하라” 판결
대법원 2부는 29일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배상하라”고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2건을 원고 승소로 확정 판결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배상을 처음 확정하며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판결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하급심에 계류 중인 12건의 재판도 곧 원고 승소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
“이겼는데도 (마음이) 착잡합니다. 다들 돌아가시고 난 뒤에 이런 판결이 나서….”
29일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및 강제징용 손해배상 인정 판결 직후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박창환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든 아들 재훈 씨(72)가 침울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승소의 기쁨보다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재판부의 5초 남짓한 확정 판결을 듣기까지 기다린 인고(忍苦)의 74년이 먼저 떠오른 것이다.
박 할아버지는 1944년 9월 일제 순사에게 강제 연행돼 미쓰비시중공업 히로시마 공장으로 끌려가 일했다. 이듬해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턱 부위를 크게 다쳤고, 광복 직후 귀국했다. 소송이 진행되던 2001년 박 할아버지는 원폭 피해 후유증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 피해배상 3건 확정…12건 남아
또 양금덕 할머니(87)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미쓰비시중공업이 1억∼1억5000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근로정신대에 근무한 피해자의 배상 판결이 확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선고 2건은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옛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인정을 처음 확정하며 “일본 정부의 불법적 식민 지배를 수행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배상할 권리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전국 법원에서 진행 중인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12건도 곧 원고 승소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외에도 히타치조센 스미토모석탄광업 등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960여 명이 소송을 벌이고 있다.
○ “만시지탄(晩時之歎) 판결“
대법원 판결 뒤 서울 서초동 서울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피해자 유가족과 소송을 도운 한국 및 일본의 시민단체 관계자와 변호사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김 할머니는 초등학교 졸업 직후인 1944년 5월 일본인 담임선생의 권유로 근로정신대에 동원됐다. 같은 해 12월 도난카이 지역을 덮친 지진은 함께 동원된 친구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때 입은 발목 부상으로 평생 거동이 불편했던 김 할머니는 이날 휠체어를 타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소송 대리인단인 이상갑 변호사는 “오늘 대법원 판결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만시지탄이다. 원고들이 거의 모두 돌아가셨는데 대법원이 이 부분에 대해 주문과 별도로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윤수 ys@donga.com·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