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고수의 한 수]강대권 유경PSG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이달 중순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본사에서 만난 강대권 유경PSG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이사·38)은 “최근 코스피가 많이 하락하면서 싼 주식이 많아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종목들을 지금 사두면 최악의 경우 회사를 청산하더라도 주식 매수금액보다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투자 전략은 ‘최악에도 더 이상 주가가 떨어지지 않을 종목 찾기’로 요약된다. 주가가 최저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는 종목을 매수해 오르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 같은 투자 전략은 두 번의 큰 위기를 겪으며 형성됐다. 1999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그해 한 증권사 주최의 ‘대학생 주식 투자 수익률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정보기술(IT)주 열풍에 편승한 덕이었다. 이후 그는 주식 투자에 적극 나섰다가 2000년 IT주 거품이 꺼지면서 깡통을 찼다. 두 번째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2007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 입사한 이듬해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많은 위기상황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었던 것.
이런 위기 경험들을 통해 그는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훨씬 떨어진 종목은 곧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금융위기 직후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 근무하던 시절 자동차 부품업체 H사를 통해 실제 경험도 했다. 당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00억 원대 수준이었다. 그는 과감히 매수를 주장했고, 회사는 그의 의견대로 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이후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H사의 시가총액은 한때 4000억 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강대권 이사는 자신이 운용을 책임진 두 펀드에 거의 전 재산을 넣어두고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올해 들어 그가 운용하는 펀드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그는 월세 집에 살면서 거의 전 재산을 두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내년에도 코스피가 반등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저평가된 주식이 많아 수익률을 낙관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에게 가입을 권유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두 펀드에 먼저 투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한국 경제가 2010년대 들어 중국의 추격 등으로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다. 2016∼2017년의 일시적 호황을 제외하면 한국 기업의 이익이 정체 상태인 것도 이 때문이며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인 주가 상승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롤 모델은 영국의 대표적 펀드매니저 앤서니 볼턴이다. 볼턴은 1979년 말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간판 펀드인 글로벌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의 운용을 맡아 28년간 연평균 19.5%라는 높은 수익률을 낸 투자의 전설이다. 볼턴도 주가가 많이 빠진 종목을 집중 발굴해 투자하는 전략을 이용했다. 강 이사는 “볼턴의 전설적인 수익률을 따라간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펀드 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유행 따르지 말고 안전-위험자산 배분해야▼
일반 투자자들은 펀드 투자로 돈 번 사람을 보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에 대해 강대권 이사는 “일차적으로 펀드 운용을 책임진 자산 운용사들이나 펀드매니저들의 잘못이 크다”고 인정하면서도 “투자자들이 두 가지만 조심하면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 시장 뜨거워진후 뒷북투자땐 손실
강 이사는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는 가장 큰 이유로 ‘유행 좇기’를 꼽았다. 그는 “일반 투자자들은 시장이 뜨거워지면 투자에 나설 때가 많다”며 “결과적으로 뒤늦게 유행을 따라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투자업계에 ‘최근 3년간 수익률이 좋지 않은 펀드에 투자하라’는 말이 있다. 이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행을 경계하라는 의미였다.
○ 애초의 투자비중 끝까지 유지해야
강 이사는 유행 좇기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계적으로 자산을 배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안전 자산과 중간 위험 자산, 고위험 자산을 적당히 배분하고 애초의 투자 비중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주식과 채권 투자 비중을 6 대 4로 정해 놓은 경우를 예로 들었다. 주식시장이 달아올라 주가가 상승하고 주식 비중이 높아졌다면 초과 비중만큼 주식을 팔아 채권을 매입해 6 대 4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주가가 떨어져 주식 비중이 6보다 낮아졌다면 채권을 팔고 주식을 더 매입해 6 대 4 비율을 유지하라고 그는 강조한다.
강 이사는 “이런 식으로 관리하면 하락장에서 주식을 더 사고, 상승장에서 주식을 팔 수 있다”며 “유행 좇기를 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에도 이런 식으로 자산을 배분해 운용하는 펀드가 있는데 인기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실정에 맞게 설계-관리하는 상품 개발을▼
저수익률 고민 퇴직연금… TDF가 구원투수 되려면
김 씨 같은 고민에 빠진 연금 가입자라면 디폴트 상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디폴트 상품이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구체적인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자동으로 미리 설계된 방식대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전문가들이 설계했다는 게 강점이다.
특히 디폴트 상품 가운데 타깃데이트펀드(TDF)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연금 투자 상품으로 TDF를 포함해 디폴트 상품으로 네 가지 상품을 지정해 놓았지만 TDF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을 정도로 인기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금투센터빌딩에서 열린 ‘맞춤형 연금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미국 자산운용사 티로프라이스의 토머스 풀라에크 씨는 그 이유에 대해 “TDF가 수익률이 좋은 데다 투자 성향에 따라 맞춤형 상품도 제공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저수익률로 고민 중인 퇴직연금에 TDF가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TDF는 근로자의 은퇴 시점을 목표로 해 생애주기에 따라 자산을 자동적으로 배분하도록 돼 있는 펀드다. 젊어서는 다소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나이 들어서는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하도록 설계됐다. 국내에서도 미래에셋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 8개 운용사가 TDF 상품을 출시한 상태. TDF의 전체 순자산(투자원금+투자수익) 규모는 10월 말 현재 1조3694억 원으로, 2011년 첫선을 보인 상품치고는 성장세가 눈에 띈다.
다만 보완해야 할 과제도 있다. 28일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국내 TDF가 퇴직연금 표준 상품으로 발전하려면 선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지적을 잇달아 내놨다. 금융연구원 김병덕 연구위원은 “일부 자산운용사 외에는 대부분 미국 자산운용사의 조언을 받아 TDF를 설계한 탓에 ‘한국형 TDF’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펀드 평가 회사 모닝스타코리아 정승혜 이사는 “한국의 TDF 투자자들이 느끼는 실제 수익률(투자자 수익률)은 운용사들이 공식 발표하는 TDF 수익률보다 나쁘다”며 “둘 간의 격차를 좁혀야만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 남재우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를 볼 때 TDF가 퇴직연금 표준 상품으로 자리 잡으려면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TDF를 설계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