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 확대 논의 실종]계도기간 12월 말 종료 ‘발등의 불’
주 52시간제의 보완책으로 꼽히는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의 연내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연간 단위로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정보기술(IT) 업종이나 조선과 건설처럼 업무량을 미리 예측하기 어려운 수주형 사업은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정부 단속과 처벌이 시작되면 지금 하고 있는 작업부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 “무책임한 정부와 정치권”
조선업계에서는 “현재는 조선업 불황으로 일감이 많지 않지만 해상 시운전 등 짧은 기간에 고도의 집중적인 업무가 필요한 경우 주 52시간 제한의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견·중소기업의 위기감은 대기업보다 훨씬 크다. 수도권의 한 금형기업 관계자는 “주 52시간제를 안착시킬 책임을 기업에만 떠넘기는 것은 행정과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라며 “탄력근로제 운용 기간 확대 등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기업은 최저임금 인상보다 주 52시간제의 타격이 훨씬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방의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사람을 추가로 뽑는 것은 중소기업에 큰 부담이 돼 결국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산량이 줄고 경영 상태는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마당에 어떤 기업이 불확실한 일자리를 늘리려 하겠느냐”며 “성수기 때 탄력근로제에 맞추려고 뽑은 인력을 비수기에는 어찌 해야 하는지 대책이 없는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여야정은 지난달 5일 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을 올해 안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협치의 첫 결과물로 탄력근로제 확대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공식 출범식에서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를 논의하면 국회도 그 결과를 기다려줄 것이다. 국회에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히면서 탄력근로제 확대 로드맵이 어그러졌다.
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사노위 논의를 기다려보자는 태도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국회가 탄력근로제 법안 심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당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국회의 입법권을 왜 경사노위에 넘기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정부 여당은 노조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끌지 말고 협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야 갈등 속에 4일 열릴 예정이던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결국 취소됐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의 바람대로 경사노위에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경사노위는 지난달 22일 공식 출범과 동시에 탄력근로제를 논의할 ‘노동시간 제도 개선 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동계와 경사노위가 공익위원 선임을 두고 대립하면서 위원회 출범조차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를 공익위원으로 추천하자 경사노위 측은 “한국노총이 판을 깨려 한다”며 반대했다. 이에 한국노총은 “이렇게 하려면 경사노위 간판을 내려라. (우리도 민노총처럼) 사회적 대화에 불참할 수 있다”며 반발하는 등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김철중 tnf@donga.com·신무경·최고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