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금융 강한 경제 만든다]3부 이제는 ‘포용적 금융’ 시대 <4>‘금융 문맹’을 막아라
지난달 영국 런던의 한 초등학교 교실. 5개 테이블에 나눠 앉은 1학년 학생 20여 명이 금융수업을 받고 있었다. 이날의 주제는 ‘직업으로 배우는 돈’. 다양한 직업에 대해 토론하면서 ‘돈은 노동의 대가’라는 것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영국에선 이처럼 한 달에 한 번씩 금융교육기관이 학교를 찾아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돈의 사용법부터 소비, 저축습관 등 금융지식을 가르친다. 초등학생은 선택과목으로, 중고교생(11∼16세)은 의무적으로 금융교육을 받아야 한다. 민간 금융교육기관 마이뱅크의 가이 릭든 대표는 “돈을 어떻게 쓰고 모으느냐가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재무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은 학교 교육에 금융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50개 주가 모두 표준 교육과정에 경제교육을 포함시켰다. 17개 주는 고교 졸업 조건으로 금융과목 수강을 의무화했다. 은행계좌 활용, 신용등급 관리 등 실생활에 필요한 금융지식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마련됐다. 학교 내에 은행을 설치하고 학생이 직접 운영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갖췄다.
캐나다도 2004년부터 초중고교에서 금융교육을 의무화했다. 재무부와 금융소비자청을 중심으로 금융교육을 국가전략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으며 매년 11월을 ‘금융교육의 달’로 지정했다. 영국은 수학 과목에도 경제·금융과 관련된 내용을 결합해 가르치도록 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평생교육 차원에서 금융교육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곳도 많다. 네덜란드는 도이체방크 출신인 왕비가 재무부 산하 금융교육기관인 머니와이즈플랫폼의 명예의장을 맡아 금융교육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3월의 한 주를 ‘머니위크’로 정해 5000여 명의 전문 강사가 전국 초등학교를 찾아 금융교육을 진행한다. 매년 10월엔 ‘연금주간’을 정해 근로자들의 노후 설계를 상담해준다. 호주에서도 취업, 출산, 실업, 이혼 등 생애주기에 따라 금융교육을 언제든 쉽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금융 이해력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2016년 한국은행과 금감원이 실시한 ‘국민 금융 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금융 이해력은 66.2점(100점 만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정한 최소 수준(66.7점)에 못 미쳤다. 조사 대상자의 47.7%는 낙제점을 받았다. 특히 20대는 61.5%가 최소 점수에 미달했다. 20대 금융 이해력은 62.0점으로 60대(64.2점)보다 낮았다.
여전히 금융교육이 양과 질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중고교에서 사회나 기술·가정 시간에 금융교육을 하고 있지만 소비생활, 자산관리 등 일부 내용만 반복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 중학교 교사는 “경제·금융 내용이 학기말에 배치돼 시험 범위에서 빠지고 진도도 못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내용도 추상적이라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경제 과목은 찬밥이다. 2019학년도 수능에서 ‘경제’ 과목을 택한 학생은 사회탐구 영역 응시자의 2.2%에 불과했다.
성인 대상의 금융교육은 더 부족하다. 대부분의 교육이 정책금융 이용자, 학자금 대출 연체자, 은퇴 상담자 등 특정 집단에 한정돼 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실시한 설문에서도 “투자자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는 답변은 2007년 이후 줄곧 20%를 밑돌았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조현선 채널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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