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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감염병 사망, 뇌혈관질환死 앞섰다

입력 | 2018-12-07 03:00:00

작년 10% 돌파… 10년새 2.6배로 증가




A 씨(62)는 지난해 말 혈액암(다발성 골수종)을 치료하기 위해 조혈모세포(골수)를 이식받았다. 수술은 성공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폐렴이 A 씨의 생명을 위협했다. 이식한 세포가 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면역 억제제를 맞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에 접종했던 폐렴 백신의 항체가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A 씨는 현재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 감염 사망, 10년 새 2.6배로

A 씨처럼 난치병을 이겨내고도 기초적인 감염병에 걸려 치명적인 상태에 이르는 환자가 늘고 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암관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사망자 28만5534명의 사망 원인을 정밀 분석한 결과 폐렴 등 감염병으로 숨진 사람이 2만8605명(전체 사망자 대비 10%)이었다고 6일 밝혔다. 지난해 뇌경색 등 뇌혈관 질환으로 숨진 사람(2만2745명)보다 많았다.

감염병 사망자 비율이 두 자릿수를 나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계청이 사망 원인을 세부 집계하기 시작한 1997년엔 감염병 사망자가 8143명(3.4%)이었지만 2007년 1만835명(4.4%), 2012년 1만8430명(6.9%) 등으로 최근 10년 새 급증했다. 역병(疫病·전염병)은 부실한 의료 인프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한국 의료기술의 발전상을 감안하면 이 같은 감염 사망의 증가는 의외의 결과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감염병은 폐렴(1만9378명)으로 68%를 차지한다. 패혈증(3994명)과 결핵(1816명), 장감염증(893명) 등 나머지 모든 감염병 사망자를 합한 것보다 2배 이상으로 많다. 국내 폐렴 사망률(10만 명당 48.1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49명)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반면 수막염과 류머티스염, 골수염 등 치료가 까다롭기로 이름난 감염병으로 숨을 거둔 사람은 2007년 527명에서 지난해 476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김재연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 전문의는 “고치기 어려운 질환은 잘 보면서 정작 기초적인 감염병은 놓치는 일이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노인 요양시설이 ‘감염병 배양실’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면역력이 약한 노인 인구가 늘어난 데다 요양시설에서 함께 지내며 각종 병원체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 환경을 감염병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겨울 독감으로 숨진 175명의 마지막을 추적 조사해보니 71명(40.6%)은 독감에 걸리기 일주일 전부터 요양원 등 집단시설에 거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감염병 사망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80대 이상(14%)과 70대(9.5%)였다.

요양병원의 부실한 감염 관리도 문제다. 2000년대 말 숙박시설을 개조하는 등 설계 단계에서 감염 예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요양병원이 우후죽순으로 늘었고, 의료기기를 제대로 소독하지 않고 쓰는 사례도 적잖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3월 전국 요양병원을 조사해보니 감염관리 인력을 둔 곳은 6.3%에 불과했다. 여러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는 반드시 격리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비율도 53.2%에 그쳤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요양시설과 병원 내 감염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만성질환자에게도 백신 지원해야”

더욱 근본적인 대책은 예방접종을 강화하는 것이다. 당뇨병과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감염병에 더 잘 걸리고, 중증으로 악화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이들 예방접종엔 건강보험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골수 이식 환자가 모든 예방접종을 다시 하려면 200만 원가량을 전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국가가 지원하는 무료 예방접종 대상은 영유아와 노인에 국한돼 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 만성질환자 등 감염병 위험군의 예방접종을 지원하는 것과 대조된다.

특히 사망자가 많은 폐렴의 경우 성능이 더 좋은 백신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가 무료접종 대상은 23가(다당질) 폐렴사슬알균 백신이다. 가격은 13가(단백접합)보다 3배 저렴하지만 면역력이 유지되는 기간이 짧다. 패혈증이나 수막염은 막을 수 있지만 정작 폐렴 예방 효과는 크지 않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성능 좋은 백신에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