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과 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공모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배경 설명을 해 주목된다.
그간 검찰은 사법농단 사태를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로 규정해 왔다. 앞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두 전직 대법관, 그리고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공모한 범죄라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 시각은 달랐다. 두 전직 대법관 영장 기각을 통해 사법농단 범죄 공모 자체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향후 양 전 대법원장 소환 조사 등 검찰 수사에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고 전 대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았던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관여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서의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등을 지적하며 영장을 기각했다.
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공통으로 사법농단 사태에 있어서 두 전직 대법관의 공모 여부를 지적했다. 재판 거래 및 개입, 법관 인사 불이익, 각계 사찰 등과 관련해서 두 전직 대법관이 범행을 실무진이나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모의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됐을 때와는 사뭇 다른 판단이다. 법원은 임 전 차장에 대해서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한 소명이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구속심사를 맡았던 것은 박 전 대법관 영장을 기각한 임 부장판사였다.
향후 정식 재판에서 다퉈질 부분이긴 하지만, 법원의 이번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실무 총책임자인 임 전 차장과 그의 직근 상급자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과의 공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검찰이 그간 주장해왔던 사법농단 사태의 범행 구조를 사실상 전면 반박한 것으로도 보인다. 검찰은 사법농단 사태가 업무상 상하 관계에 의한 지시·감독에 따른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이 밝힌 두 전직 대법관의 기각 사유에 비춰봤을 때 향후 보강수사 없이는 사법농단 사태의 최고 윗선의 공모 여부를 입증하는 데에는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모 관계가 충분히 성립될 수 있을 정도로 추가적인 증거 수집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또 법원은 앞서 진행된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수사로 이미 상당한 증거가 수집돼 있고, 도망칠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 구속수사의 필요성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사실상 현 상황에서 검찰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한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발부할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은 법원 판단에 즉각 반발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게 법이고 상식”이라며 “임 전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反)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