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두 사람에 대한 영장 기각 이유는 비슷했다. 수사 자료를 검찰이 충분히 확보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데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함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공모한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영장 기각 법관들은 임 전 차장 구속영장을 발부했거나 두 사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임 전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직속상관인 두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은 재판 독립을 훼손한 반(反)헌법적 중범죄의 규명을 막는 것으로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 근무경력이 없고 전 대법관들과 이해관계도 없는 판사들이 심사해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이 언급한 ‘사안의 중대성’이나 ‘실체적 진실 규명’, ‘형평성 차원의 문제’는 구속 여부를 결정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두 사람이 무죄라는 뜻은 아니다. 죄가 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피의자가 일단 구속되면 위축된 상태에서 혐의 사실을 쉽게 털어놓는 경향이 있다. 검찰이 수사 편의주의 차원에서 구속 수사의 유혹에 빠져드는 이유다. 그러나 수사는 불구속으로 해야 한다는 게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다. 수사와 구속은 사법적 단죄의 시작에 불과하다. 구속만 하면 끝이라는 구태의연한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련의 과거 정권 수사 과정에서 법원과 검찰이 형사소송법이 선언한 ‘불구속 수사’ 원칙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전 대법관들의 방어권을 보장해줘야 재판 거래 의혹 등에 대한 정확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죄가 있으면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아내 구속 수감하면 된다. 전 대법관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잘못된 구속 수사 관행을 바로잡는 전범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