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현대 무용수 부부 류석훈·이윤경
류석훈 이윤경 부부. 이윤경 교수 제공.
현대 무용수인 부부는 18년째 매년 듀엣으로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매일 춤을 추는 그들에겐 젊음과 건강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류석훈 댄스컴퍼니 더바디 대표(48)와 이윤경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교수(54)는 11일 오후 7시에도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에서 함께 무대에 선다.
“춤에 대한 열정이 식으면 우리의 존재는 무의미해진다. 우리는 함께 춤을 추며 존재함을 느낀다. 춤을 추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 우리 부부는 춤에 대한 열정은 물론 춤을 통해 추구하는 방향이 같다.”
류 대표와 이 교수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이 교수는 5살 때 한국무용을 시작으로 평생 춤을 추며 이 분야에서 인정받는 무용수였고 류 대표는 군대를 다녀온 2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춤을 춘 ‘늦깎이 무용수’였다. 류 대표와 이 교수는 서로를 ‘선생’으로 불렀다.
“류 선생을 1994년 처음 봤다. 류 선생이 당시 ADF(미국댄스페스티벌)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외국 유명 안무가들이 미국에서 6주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류 선생이 돌아온 뒤 현대무용의 대가 육완순 선생님이 내게 소개시켜줬다. 육 선생님이 준비한 슈퍼스타 지저스크라이스트 공연에 류 선생을 출연시킨 게 계기였다.”(이 교수)
이 교수는 류 대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솔직히 ADF 측에서 왜 류 선생을 선택했는지 의아했었다. 하지만 그를 선택한 외국 안무가들의 눈은 정확했다. 당시 남자 무용수들은 힘차고 거칠게 춤을 췄다. 그런데 류 선생은 여자보다 더 부드러운 동작으로 춤을 췄다. 움직임이 너무 아름다웠다.”
류석훈 대표. 이윤경 교수 제공.
대학 입시를 앞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류 대표는 충북 청주에서 무용학원을 하던 누나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했다.
“솔직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였다. 누나 일 도와준다고 학원에 갔는데 ‘무용을 해보는 게 어때’라고 했다. 그래서 무용학과에 진학했다. 무용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에 준비가 덜 됐다. 군대를 마치고 돌아와서야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류 대표)
이 교수는 류 대표가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선명하게 춤을 췄다’고 했다.
“무용을 늦게 시작해 몸에 밴 게 없었던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분석됐다. 어렸을 때부터 했다면 그동안 해왔던 루틴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춤을 췄을 텐데 류 선생은 언제나 기본을 중시했다. 외국 안무가들은 그 점에서 가능성을 높이 봤던 것 같다.”
기본과 원칙, 전통을 중시하던 이 교수의 춤과 일맥상통했다.
“25세에 본격적으로 춤을 췄으니 많이 늦었다. 몸이 빨리 굳었다. 수도 없이 몸을 풀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기본을 열심히 하다보니 춤이 보였다. 원초적인 움직임을 시작으로 춤을 만들어갔다. 하루 12시간 씩 춤을 췄다. 지방에서 서울로 오면서 춤을 춰야해 힘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하다보니 주위에서 공연 무대에도 자주 올려줬다.”
류 대표는 무용을 본격적으로 배울 때 첫 단추를 잘 꿴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초창기 이대 동문 무용단인 컨템퍼러리와 탐에서 춤을 많이 췄는데 항상 기본기를 강조했다. 기본을 하고 작품에 들어가는 습관을 그 때부터 잘 들였다. 지금까지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무용대상 수상작 ‘변형된 감각’.류석훈 이윤경 부부. 이윤경 교수 제공.
류 대표와 이 교수가 중년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하게 춤을 출 수 있는 배경에 이런 기본이 있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까지 2시간 정도 몸을 푼다. 근육 마사지와 스트레칭을 하고 바와 플로어까지 하고 작품 연습에 들어가거나 공연을 한다. 내가 50년 가까이, 류 선생이 25년 매일 춤을 추고도 아직 큰 부상 없이 매년 무대에 오르고 있는 이유다. 요즘 아이들은 빨리 결과를 내고 싶어 대충하고 작품 연습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다 큰 부상을 입는다.”(이 교수)
워밍업을 등한시하는 게 최근 어린 무용수 중에서 몸이 틀어지거나 무릎 발목의 인대를 다쳐 꿈을 접는 경우가 많아지는 이유란다.
1990년대 활동 당시 현대무용 공연에서 듀엣을 도맡아 하던 이 교수는 1995년 컨템퍼러리 20주년 작품을 할 때 류 대표와 함께 했다. 그 때부터 계속 함께 작업을 했다. 둘은 2001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 첫해부터 부부 공연도 시작했다. 우리 둘은 춤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잘 맞았다. 무용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 졸업생 등을 가르치다보니 무용단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 우리 성을 따 ‘이류 무용단’으로 시작했다. 2001년 ‘변신’이라는 군무를 공연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계속 공연하다 2004년 제대로 무용단을 만들면서 더바디(The Body)로 바꿨다. 일류도 아니고 이류는 이상해 바꾼 것이다.”(류 대표)
류석훈 이윤경 부부. 이윤경 교수 제공.
더바디는 부부의 철학을 담은 것이다.
“우린 춤을 출 때 몸 움직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가장 원초적인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그래서 ‘몸’이라는 더바디로 명명했다. 우리 공연은 특별한 세트가 없다. 몸으로 시작해 몸으로 끝난다.”(류 대표)
“우리가 추구하는 최종점은 같다. 몸이다. 가는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요즘 무용계에서도 시대 흐름에 따라 융복합이 유행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분별한 융복합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우리는 순수하게 몸으로 현대무용을 하고 싶다. 융복합을 시도하다 보면 본질이 없어지고 엉뚱한 게 주가 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그래서 우리 작품은 좀 클래식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이 교수)
그렇다고 시대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무용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융복합은 배제하지만 몸 움직임의 변화는 시대 흐름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과거와 현재, 움직임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게 다르다. 그런 면에선 시대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 그래도 융복합의 주는 몸이어야 한다.”(류 대표)
“한국무용을 시작해 발레, 현대무용가지 무용은 다 해봤다. 결국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몸의 전통성이다. 외국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동작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전통을 추구한다. 순박한 우리 조상들의 움직임을 현대무용화 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이 교수)
이윤경 교수. 이윤경 교수 제공.
부부는 한국적인 움직임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적인 움직임은 ‘정중동(靜中動)’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다고 정이 아니고 많이 움직인다고 동이 아니다. 정과 동을 몸으로 느끼고 고민을 하면서 춤을 춰야 한다. 외국에 가서 공연하면 한국적 요소가 있으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고 질문을 한다. 결국 전통적인 요소가 춤에 반영돼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이 교수)
“한국적 요소에 서양적인 모던함이 섞여 나올 때 해외 관계자들이 신기하게 바라본다.”(류 대표)
류 대표는 한국전통무용의 대표주자 국수호 선생(70)으로부터 전통무용을 배우고 있다.
“한국무용의 호흡을 배우고 있다. 현대무용수들이 하지 못하는 움직임을 찾고 있다. 승무의 장삼을 입고 춤을 추며 전통적인 움직임을 현대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류 대표는 안무를 맡고 이 교수는 연출을 한다.
“류 선생은 몸 움직임에 대한 생각이 많다. 창의적이라고 할까. 작품을 할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류 선생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나는 그 작품을 조각 다듬듯 다듬는 역할을 한다. 류 선생이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면 나는 핵심만 뽑아내 스토리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이 대표)
“이 선생은 잘라내는 역할을 잘한다. 잘 다듬는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작품을 만들 때 의견충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작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류 대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예술종합예술실용학교에서.
부부는 18년 함께 하며 매년 1개의 군무 신작과 듀엣 작품을 여러 개 합작했다. 매년 부부 정기공연 1회를 한다. 초청 무대까지 감안하면 연 2~4회 정도 함께 무대에 선다. 류 대표는 크고 작은 무대에 15회에서 20회 선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이 교수는 연 5회 정도 무대에 선다. 두 부부는 평생 함께 춤을 추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다.
“어렸을 때부터 춤 외에는 생각해본 게 없다. 따른 쪽으로 시각을 돌릴 수 없었다. 춤을 안 추면 화가 난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느낌이랄까. 아직도 몸 관리하면서 계속 춤을 추는 이유다. 70세까지 지금처럼 무대를 1시간 정도 누빌 수 있는 움직임과 에너지를 지키고 싶다. 그 이후엔 깊이와 내공 있는 춤을 추고 싶다.”(이 교수).
“좀 늦게 시작했으니 이 선생보다 더 오래 춰야할 것 같다. 나로선 늦게 시작한 게 춤추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남자 무용수의 경우 일찍 시작해서 군대 마치고 경제적인 곳에 눈을 돌리다보면 다른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난 늦게 시작해 계속 배우겠다는 자세로 무용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류 대표)
현대무용계에서 류 대표는 ‘레전드’로 불린다. 늦게 시작해 최고가 됐고 많은 나이에도 아직 열정적으로 춤을 추기 때문이다. 부부에게 나이차가 느껴지지 않았다. “매일 춤을 춰 젊어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부는 “함께 춤을 추며 백년해로 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