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금융 강한 경제 만든다]4부 금융이 커야 富도 자란다 <2>멀고 먼 ‘한국판 블랙록’
국민의 부(富)를 불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ISA 같은 ‘관제 금융상품’을 만들어내기보다는 ‘한국판 블랙록’이 탄생할 수 있는 금융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낡고 복잡한 규제와 투자자에게 불리한 세제 등에 발목이 잡혀 국민의 재산 증식에 앞장서야 할 국내 자산운용업계는 구멍가게 수준에 머물러 있다.
○ 은행, 보험보다 세세한 자본시장 규제
A증권사는 2년 전 인공지능(AI) 기반의 자산관리 서비스인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한 투자일임 서비스를 구상했다. 하지만 금융사가 알아서 포트폴리오를 굴려주는 투자일임은 반드시 고객과 대면하고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법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올해 6월이 돼서야 자기자본 40억 원 이상인 금융사가 1년 6개월 이상 운용성과를 공시한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할 때만 비대면 투자일임이 가능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나열식으로 디테일하게 열거된 자본시장법을 ‘금지하는 것 말고는 다 해도 된다’는 원칙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그래야 금융사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투자 꺼리게 만드는 세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자본시장 혁신과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본시장 혁신을 통해 부동산에 몰린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이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투자를 발목 잡는 세제를 함께 손보지 않으면 자본시장이 국민의 재산을 불릴 터전이 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을 팔 때 손익과 관계없이 무조건 매도대금의 0.3%를 떼어가는 증권거래세나 큰손들이 장기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배당소득세에 대한 개편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소액 투자자부터 큰손 투자자까지 세제에 불만이 크다. 자본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되려면 ‘당근’이 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글로벌 운용사 키워야
영국의 자본시장 분석매체 IPE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100대 자산운용사’에 이름을 올린 국내 운용사는 한 곳도 없었다. 세계 1위인 블랙록이 6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굴리는 것과 달리 국내 1위인 삼성자산운용의 운용자산은 30분의 1인 1945억 달러에 그친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운용 역량이 떨어지는 데다 과도한 투자자 보호조항이나 규제까지 겹쳐 국내 운용사들은 비슷한 상품만 만들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운용업계 성장이 정체됐다”고 말했다. 그나마 자본시장 규제 완화도 덩치가 큰 증권사 위주로 이뤄져 운용사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높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펀드 운용과 관련해 시시콜콜한 공시 의무사항이 많고 이게 다 비용이 돼 투자자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건혁 gun@donga.com·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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