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이덕무의 한문소설 ‘은애전(銀愛傳)’에서
안 노파는 자기 시누이의 손자인 최정련에게 “은애를 아내로 맞으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최정련은 “은애는 아름다우니 어찌 정말 행복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안 노파는 일이 성사되면 옴을 치료할 수 있는 약값을 달라고 했고 은애가 최정련을 좋아하고 남몰래 간통한다는 거짓 소문을 냈다. 이 소문은 온 마을에 퍼져 은애는 시집을 갈 수 없게 됐다. 안 노파가 은애를 정절을 지키지 않는 여자로 만들었다. 조선 시대에서 이런 낙인은 사형 선고와 다름없다. 이덕무는 안 노파가 은애를 사회적으로 매장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안 노파가 추가해서 거짓말을 퍼뜨리지 않았다면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은애는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후 7∼9시에 치맛자락을 당겨 모으고 소매를 걷어붙인 후 부엌칼을 들고 안 노파의 침실에 들어가 한을 풀듯 안 노파를 죽였다. 강진현감 박재순은 안 노파의 시신을 살피고 은애에게 자백을 받았다. 은애의 옥사는 임금인 정조에게 보고가 됐다. 좌의정 채제공은 “사정이야 이해가 되지만 살인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조는 은애를 용서하고 풀어줬다. 정숙한 여인이 음란하다고 모함을 당한 것은 원통한 일이다. 은애는 사람들이 내막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칼을 쥐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니라 안 노파가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정조는 “은애 같은 여인을 살려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풍속과 교화를 펼 수 있겠느냐?”며 용서의 이유를 설명했다. 은애는 살인자에서 정절을 지키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재평가됐다. 정절에 대해 매우 엄격했던 조선 여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풍속과 교화라는 틀에서 이처럼 잔인하고도 초법적인 살인이 미화되는 게 과연 정당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